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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를 만드는 한 젊은 이와의 만남

작가 권태명 조회수 310 추천수 0 등록일 2017-02-11

지역 : 일본 > 나라 현


일본도(日本刀)를 만드는 한 젊은 이와의 만남

직경이 10센티미터나 되는 대나무를 무 베듯 싹둑 자를 수 있는 일본도는 간결함과 절제 미의 극치이자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능력의 증명이기도 하다. 에도(江戶)막부를 창설한 도쿠가와 가문의 검술사범을 지낸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의 아버지 야규 세키슈사이(柳生石舟斎)는 시들어가는 꽃도 그가 검으로 꽃 대를 잘라 화병에 꽂아두면 소생했다는 전설적인 검성(劍聖)이었다. 꽃을 살리는 힘은 검에 스민 검객의 정기에서 나온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칼날이 지나간 작약 꽃 줄기 단면의 비범함을 알아 본 방랑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는 훗 날 일본 제일의 검객으로 올라섰다. 범인의 눈으론 판별이 불가능한 미세한 부분의 차잇 점을 읽어낸 검성들의 실력과 예리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미야모토는 두 개의 검을 동시에 사용했다는 설이 있으나 한 개의 검을 좌우 두 손을 편한대로 바꾸어 가며 구사한 검객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무기로서 검이 일본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3세기부터다. 이 시대에 지금의 도쿄 서쪽 사이타마현의 이나리야마고분과 일본열도 서남부 시마네현의 쓰쿠리야마고분에서 무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 검이 출토되었다. 특히 5세기 후반 이나리야마고분에서 발굴된 검에는 당시 왕을 받들었던 신하의 공로를 치하하는 115개 문자의 한자 글귀가 새겨져있다. 나라시대에서 헤이안시대에 이르는 7-9세기 사이에 제작된 검은 오사카 사천왕사에 보존돼있는 병자숙림검과 칠성검 외엔 현재 전해지는 게 찾기어렵다. 이 시대의 검은 지금의 일본도 와는 달리 모두 곧게 뻗은 직도였다.  

초승달처럼 완곡하게 휘어진 지금의 일본도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다만 10세기 들어서부터 말이 전투에 동원되면서 기마전에 사용이 유리한 길고 휘어진 검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대 일본은 백제에서 처음으로 말을 들여갔다. 일본서기는 오진천황(15대)15년 편에 "백제 왕이 아직기를 통해 말 두 필을 보내왔으며 가루(輕, 지금의 나라현 가시하라 시)의 사카노 가미(坂上, 백제인)에서  기르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직기는 고대 일본의 유력한 백제 씨족인 야마토노 아야우지(東漢氏)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 일본에 말문화가 보급되기 시작됐다. 도쿄 북부의 군마(群馬)현은 말과 관련된 이름이며 고대 이 지역에  9개의 말 목장이 있었는데,이 중 5개가 신라와 백제인들의 소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도는 일본이 개발한 독자의 형태와 기능을 겸비한 무기이며 천년에 이르는 긴 역사를 지니 있다. 12-14세기에 걸쳐 무인이 정권을 잡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도검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부터 처음으로 정치중심세력이 그 때까지의 귀족에서 무인에게로 이동되는 이른바 막부시대가 시작되었다. 일본 역사에서 최고의 도검제작자로 추앙 받는 마사무네(正宗)도 바로 이 시대에 등장한 인물이다. 마사무네의 도검제작 작풍은 당시는 물론 후세의 일본도 도공(刀工)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어 전국시대를 지나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은 에도막부시대로 넘어가면서  에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많은 명 도공들이 등장했으며 이 때부터 무기로만 제작하던 도공사회에 예술가 풍의 도공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사들의 전용 물이었던 검이 부유 층의 장식품으로도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에도막부 말기 복고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옛날 방식의 도검제작이 다시 시도되었으나 1867년의 명치유신 직후  폐도령(廢刀令)이 시행됨에 따라 군인과 경찰관 외에는 도검 착용이 금지되었다. 이로써 700여 년 간 이어져 온 무사계급이 해체되고 검의 사용도 동시에 막을 내렸다. 

서리가 내린 초 겨울 아침 이른 시간, 전 날 밤 묵은 나라(奈良)시에서 남쪽으로 10여 킬로미터 거리인 덴리(天理)시를 찾았다. 역에 내려 지도를 보며 10여 분 걸어가자 조용한 주택가 얕은 개울 턱에 흡사 창고 같은 허름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본도를 만드는 오오다 슈사쿠(太田周作)는 고운 피부색에 앳된 모습의 새파란 젊은이였다. 일본도를 만드는 사람이라 지긋한 나이의 도공을 예상했었는데의외였다. 인사를 하고 젊다고 했더니 서른 다섯 살이라며 가벼운 웃음으로 답례해 주었다. 내민 손을 잡자 손바닥이 발바닥처럼 두껍게 느껴졌다. 검 제작에 손을 댄지가 12년 째라며 각종 도구가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흙 바닥 작업장을 대충 정리한 후 앉으라며 작은 의자를 내밀었다.

대체로 장인(匠人)과의 대화는 묻는 쪽이 그 방면에 아주 무지하면 대화의 연결이 어렵고 짧은 지식으로 좀 알고 있음을 과시하 듯 전문 용어를 몇 개라도 구사하면 오히려 경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오다 씨는 상대하기가 아주 편한 사람이었다. 쉬운 일도 많은 요즘 세상에 어떻게 힘든 도검제작의 길을 택하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에는 한 뜸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좋아해서” 라고 했다. 대학을 마친 그는 곧장 나라현의 이름 높은 스승 밑에서 수련 의무기간인 4년 동안 호된 훈련을 받고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뒤 다시 스승의 작업장에서 2년 더 실습을 마친 후 비로소 자기 이름을 내걸었다고했다. 자격시험중에서도 한 주간 동안 실시되는  단검 제작 실기시험이 다른 어떤 시험 보다 통과가 어렵다고 했다.

일본도 제작은 크게는 다섯 단계이나 더 쪼개면 21개 과정에 걸쳐 정성을 쏟아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한 자루 제작에 세 사람이 붙어 보통은 석 달에서 여섯 달, 길게는 1년이 소요된다고 했다. 원료를 만드는 첫 단계부터 칼 자루의 등 부분에 제작자의 이름을 새겨 넣는 마지막 단계까지 그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일본도는 원료 선정부터 까다롭다. 대부분의 칼은 선철이나 고철등을 재활용하지만 일본도는 반드시 사철(砂鐵)에서 뽑아낸 최 고급 철인 다마하가네(옥강, 玉鋼)만으로 만들어진다. 옥강에는 명검 제작에 필수요소인 적당량의 고품질 탄소가 포함돼있다. 탄소성분이 지나치면 부러지기 쉽고 너무 적으면 쇠가 물러서 도검에 적합치 않다. 옥강은 길이 3미터, 너비 1미터 크기의 흙으로 만든 노(爐)에서 탄생된다. 이 노에 사철을 채우고 사흘 밤낮을 섭씨 800 이상의 고열을 가하면 다른 성분은 연소되어 없어지고 탄소를 포함한 고품질의 쇳덩어리만 남게 된다. 이 것이 옥강이다. 이 때 불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발풀무를 다타라 라고 한다. 옥강이 완성될 때가지 도공들은 사흘 밤낮을 꼬박 새며 불을 지핀다. 오다씨는 흙 화로 대신 벽돌로 된 노를 사용하고 있었다. 옥강의 원료인 양질의 철광석은 시마네(島根)현에 많아 도공들은 이곳을 일본도 제작을 위한 신의 땅이라고 부른다. 

옥강을 절편 모양의 얇은 조각으로 만들어 1000도의 고열에 달구었다가 찬 물에 넣었다 두들기는 작업을 10회 이상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탄소함량이 많은 철편과 적은 철편을 분류한다. 피철(皮鐵)이라고 부르는 고탄소 함유 철편은 검의 겉 부분에, 그리고 심철(心鐵)이라는 저탄소 함유 철편은 검의 속 부분으로 사용된다. 다음으로 이들 철편을 다시 1000도의 고열에 달구었다 꺼내 접어가며 무거운 쇠망치로 두들기는 작업을 10여 차례 반복하여 절편 모양을 길게 늘인다. 오리가에시(折返)라는 이 작업을 통해 검의 피질과 심철 부분을 완성한다. 망치는 직경이 5센티미터, 길이가 20여 센티미터에 이르는 둥근 모양으로 나무자루까지 합해 무게가 5킬로그램 정도나 되 이 것으로 백여 회를 쉬지 않고 두드리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내리치는 부위도 정 중앙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고온에 달구어진 철을 망치로 두드릴 때는 철의 빛 갈에 따라 온도를 파악하기 위해 작업장의 조명을 끈다.

다음 피철부분을 U자형으로 만들고 그 안에 심철을 끼워 다시 900도 정도의 열을 가하면서 100여 회 두드리면 비로소 일본도의 모양이 갖추어진다. 초벌 검은 몸체의 등 부분은 삼각 모양으로, 그리고 칼 날쪽을 예리하게 된다. 이어 검을 800도 정도의 열로 달군 후 찬 물에 넣어 급냉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뒤틀림을 조정한다. 그리고 전체가 검붉은 색을 띨 때까지 약한 열을 가하고 식히면서 거친 표면을 다듬는다. 이상의 단계를 거친 검에 점토와 탄과 지석(砥石)가루를 물로 묽게 비벼 표면에 바른 후 닦아내고 도공의 이름과 제작연도와 문양을 그려 넣어 다시 불에 운 후 마지막으로 연마공에게 보네 여러 개의 숫돌로 날을 세우면 비로소 일본도 제작의 길고도 힘든 여정이 마무리된다. 시마네현에는 천년 넘게 일본도의 연마만 해오고 있는 가문도 있다.

여러 과정의 실연을 곁들인 오오다씨의 설명은 두 시간 너머 걸렸다. 일본도를 만드는 작업장은 보기에 원시적이고 온 갖 도구가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있어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옛 날 대장간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도공들은 그런 작업장을 신성한 공간으로 여긴다고 했다. 일이 있는 날은 새벽 일찍 정화수 그릇 앞에서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정성을 다해 기원한다고 했다. 철과 장작과 석탄, 그리고 흙먼지가 뒤범벅인 작업장이지만 도공들은 모두 새 하얀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 그만큼 검 제작 작업을 신성시 하고 일하는 동안 잡념이 끼어들지 않게 정결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의식의 표현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일본도를 만드는 도공을 단순한 대장장이가 아닌 일본인의 정신을 구현하는 현대판 연금술사로 대접하고 있다.
10시에 시작된 오오다씨의 설명은 1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작업장 앞 개울 건너 편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아직은 도공초년생이라 생활이 그리 넉넉지 않은 듯 했다. 도검제작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짬날 때 다른 일도 곁들어 하고 있지만 삶이 힘들어도 도검제작에 일생을 걸 각오라고 했다. 최고의 장인을 향한 그의 앳된 얼굴에 비장 감이 느껴졌다. 차와 함께 갖고 나온 커다란 도검 사진책을 펼치면서 다시 30여분간의 설명이 이어졌다. 도검원료인 주먹만한 크기의 옥강 한 개와 책 한 권 그리고 나라지방 특산물인 단감 한 봉지를 선물로 받았다. 십 년 뒤쯤 일본에서 손꼽히는 도공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하고 일어섰다.       

현재 일본에는 300여 명의 도공이 활동 중이며 이 가운데 인간문화재는 두 사람뿐이다. 나라현, 시마네현, 기후현, 가나가와현 등지에 도검제작소가 많이 분포되어있다. 시대가 변한 지금 더 이상 무기가 아닌 하나의 미술품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아직도 무사의 혼으로 상징되는 일본도는 일본인의 정신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황실은 물론 신사 등에는 옛 날부터 내려오는 많은 명검이 보존돼있다. 일본에는 현재 국보로 지정돼 있는 검이 백십 여 개, 국가지정주요문화재가 약 육백 개, 그리고 주요미술품이 약 천 개에 이르고 있으며 한 자루 가격이 천오백만엔에 이르는 것도 있다. 국보급 검은 모두 14세기 초 남북조시대까지 제작된 것이며 그 후 만들어진 것 중에는 국보급이 하나도 없다.

귀국 후 한 달 남짓 지난 어느날, 발송지가 일본으로 된 작은 소포 하나가 배달돼왔다. 보낸 사람 太田周作. 그 젊은 도공이었다. 손잡이와 몸체가 같은 두께의 철로 된 15센티미터 크기의 일본도 모형이었다. 손 잡이의 한 면엔 그의 이름이, 그리고 반대 면에는 ‘一期一会(이치고 이치에)’라는 문귀가 음각돼있었다. 뜻 밖의 선물이었다. 감사의 뜻은 편지로 보냈다. 이 넉자 문귀는 직역으로는 ‘일생에 한 번’이란 뜻이지만 기술이든 기예든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혼신의 힘을 쏟는 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손님에게 차(茶)를 대접할 때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끓인다는 다도(茶道)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러지지도 휘어지지도 않으면서 단 칼에 틀림 없이 자른다는 세 가지를 표어로 내세우는 일본도의 특성은 현대 야금학에서도 연구대상의 최 고위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도란 일본 아닌 외국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가타나(刀) 또는 쓰루기(劍)라고 불린다. 검의 종류로는 손잡이를 뺀 칼 몸체길이가 71.5센티미터의 검을 가타나, 30-60센티미터 크기의 검을 와키자시(脇差), 그리고 29센티미터 이하를 단도(短刀)라고 부르며 가타나 중에서도 1미터를 넘는 특별히 긴 검을 다찌(太刀) 라고 한다. 옛날 무사들은 언제나 가타나와 와키자시 등 두 개의 검을 차고 다녔다. 할복명을 받은 무사가 사용하는 검은 단도였다. 

가타나는 본래 무사를 위해 만들어진 무기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무사인 사무라이는 12세기 중엽인 헤이안시대 말기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12세기 말엽 가마쿠라막부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인 직업무사제도가 확립되었다. 이후 1867년 도쿠가와막부가 막을 내리기까지 700여 년 간 일본은 무사가 지배하는 나라로 이어졌다. 흔히 일본문화를 검의 문화라고 한다. 일본인의 의식구조나 나라의 조직, 운영방식의 기본 틀이 모두 이 시기에 정착됐다. 일본의 무사는 충성과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집단이었다. 무용과 의리, 정직, 검약 등의 덕목을 갖춘 무사는 전쟁이 일어나면 주군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전쟁에서의 승리가 무사의 최우선 목표지만 얼마나 당당하고 용감하게 싸웠느냐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다. 명예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겼고 주군에 대한 충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무사는 생사초탈의 정신을 본질로 하는 선종사상에 기인했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였던 미국의 루즈 베네딕트교수는 일본 문화의 원형을 분석한 그의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은 검을 자신의 몸과 동일시했다. 일본무사는 외출할 때는 물론 손님을 접대할 때나 식사를 할 때도 항상 검을 휴대했다. 밤에는 두 자루의 검을 머리맡 검 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두고 잤다. 무사는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는 자세를 잊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미군함정을 들이받아 전투기와 함께 산화한 가미가제특공대원들은 확실한 죽음을 앞에 놓고 전투기에 오르면서 모든 소지품을 다 버렸으나 일본도만은 휴대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의 제철기술은 5세기 전후 우리나라 가야에서 전수됐다는 게 일본 학계의 정설이다. 일본고대 역사서인 고사기는 오진천황(15대) 편에서 “조선반도에서 단야직인(鍛冶職人)인 탁소라는 사람이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야직은  대장장이를 말한다. 헤이안시대의 사전인 화명초(和名抄)는 "지금의 시마네현에 있는 오다신사의 제신이 대다라대명신(大多羅大明神)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 대다라신은 6세기 경 이 지방에 정착했던 가야도래인들의 조상신으로 보고 있다. 일본서기도 비다쓰천황(30대)4년 편에서 "신라의 다다라(多多羅)로부터 제철기술자가 일본으로 왔다" 고 전하고 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 고대 일본역사서에 나오는 다라(多羅)는  6가야국의 하나를 가르키는 표현이다. 에도막부 때 이름난 제철기술자였던 시모하라 시게나카는 그의 ‘鐵山秘書(철산비서)’에서 "천일창은 이즈모국(현 시마네현)에 제철기술을 전수했다" 고 소개하고 있으며 문화평론가인 시시도 기이치씨도 그의 ‘古代日韓鐵文化(고대일한철문화)’에서 "고대 일본에 최초로 철 문화를 전달한 사람은 신라 왕자인 천일창(天日槍, 아메노 히보코)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대 일본 제철산업의 중심지였던 시마네현에는 천일창을 제신으로 하는 가나코야신사가 있으며 시마네현과 오카야마현 돗토리현 등 서(西) 일본 일대에는 고대 제철과 관련 있는 ‘다타라’를 붙인 지명도 여러 곳 있다.  특히 천일창을 제신으로 받드는 신사는 일본 전역에 분포돼있다.  

이곡  권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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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을 제련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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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의 원료인 옥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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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달구는 목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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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강으로 만든 초벌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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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 다음 단계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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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티 제거를 위해 점토와 탄 및 지석 가루를 섞은 액체를 바른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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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티를 제거한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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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마를 마친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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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제작에 사용되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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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현 덴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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