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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을 안겨주는 셰난도아국립공원

작가 권태명 조회수 289 추천수 0 등록일 2017-03-19

지역 : 미국 > 버지니아


평온을 안겨주는 셰난도아국립공원

그러니까 그게 근 40년 전 일이다.나는 요즘도 가끔 영상으로 셰난도아(Shenandoah)국립공원을 감상한다.전엔 DVD를 틀었지만 지금은 유튜브에 올라있는 것 중에서 골라본다.1978년 워싱턴특파원 시절 처음 버지니아 주 서북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이 공원을 찾았을 때 받은 감동과 희열은 40년이 된 지금도 잊을 수 없다.나에게 셰난도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워싱턴D.C.에서 서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셰난도아는 애팔래치아산맥의 한 부분으로 미국의 다른 국립공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보아서 아름답고 평온을 주는 공원이다.자주 찾아 친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이 높지 않은 데다 구릉처럼 경사가 완만하고 단풍은 그야말로 절경이다.연중 300만 가까운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도 부드러운 산세에 사슴과 곰, 야생 칠면조 등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을 가까이 할 수 있고 계절따라 연출하는 숲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서다.미국에는 모두 59개의 국립공원이 있다.옐로우스톤이나 로키산, 자이언, 그랜드 캐니언, 데스벨리, 모뉴멘트벨리 등은 그 우람한 규모와 광대함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셰난도아는 새둥지처럼 아늑함과 평화로움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인디언 말인 셰난도아가 "별의 딸"을 의미하는 데서도 미감(美感)이 베어난다. 

 


4억8천 만년 전에 형성된 애팔래치아산맥은 캐나다 동북단의 뉴펀들랜드 섬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남단 앨라바마 주 북부까지 2,400킬로미터에 이르는 북미대륙의 등뼈이다. 도중에 캐나다와 미국의 23개 주를 통과하며 수 많은 산군(山群)을 형성한다. 셰난도아에서 멀리 서쪽으로는 북부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메릴랜드 주와 웨스트 버지니아 주를 거쳐 버지니아 주 남단까지 640km에 이르는 엘리게이니 산맥이 뻗어있다. 이 산맥 중 특히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 험산이 많아 초기 이민자들이 서부로 진출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었다는 곳이다. 

 


애팔래치아산맥에서도 버지니아 주 셰난도아공원 북단의 프론트 로얄에서 남쪽의 웨인스보로 마을까지 산등성이를 따라 난169km(105마일)의 산길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와 웨인스보로에서 남쪽  테네시 주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까지 이어지는 블루리지 파크웨이 755킬로미터를 합한 924킬로미터의 산길은 미국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절경의 연속이다. 특히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산 길은 풍광이 수려한 40여 개 소에 경관을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서쪽에 세난도아 강과 깊은 계곡과 평화로운 농촌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완만한 구릉지세인 피드몽 산이 길게 이어진다. 322제곱km에 이르는 공원인근의 광활한 지역이 국립삼림보호지역으로 지정돼있다. 

 


처음 이곳을 찾던 날 하늘을 가린 숲이며 멀리 산 아래로 펼쳐지는 농촌마을의 그림 같은 경관이 쉴새 없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평화로운 그 곳이 남북전쟁 때 치열한 전쟁터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S자 형으로 반복해서 산 정상을 좌우로 바꿔가며 이어지기 때문에 산 아래 풍광을 골고루 감상할 수 있어 좋다. 게다가 사슴과 곰,  야생 칠면조와 너구리,  그리고 여우와 토끼 등 온갖 동물들이 지나가는 차도 무서워 하지 않고 유유히 길을 오가며 여행자를 즐겁게 해준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는 대부분의 미국국림공원 처럼  최고 시속을 72km(45마일)로 묶어 놓았지만 보통 50km를 넘기가 쉽지 않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와 블루리지 파크웨이는 1939년 루즈벨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인해 발생한 실업자구제대책사업의 하나로 1939년에 만들어진 길이다.

 


1977년 12월부터 시작된 나의 워싱턴특파원 시절은 건강문제로 심하게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부임하기 몇 해 전부터 앓고 있던 디스크가 격무 때문에 더 악화돼 처음 2년 동안은 집에서 사무실과 출입처를 돌아다니는 일 만으로도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유럽이나 일본, 중국 등의 워싱턴지국은 대게 3-5명에서 많게는 10명 안팍의 특파원들이 파견돼있었지만 한국은 어느 회사나 한 사람 뿐이었다.백악관은 한 주에 두 세번 들렀지만 의회와 국무성, 그리고 국방성은 하루도 빠짐 없이 한 번씩 돌아야 했다. 이들 기관이 대부분 워싱턴 시내여서 그리 멀진 않았지만 말도 서툴고 지리도 어두웠던 처음 1년은 정말 지옥과도 같은 하루하루였다.워싱턴으로 떠나기 전 서울대학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무리하지 말아라는 권도를 받고 갔으나 격무에 스트레스가 겹쳐지자 병세는 악화일로였다.

 


처음엔 한국인 정형외과에 가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어 결국 대형종합병원을 찾았다.증상 설명을 들은 의사가 한 시간 가까운 정밀 촬영을 마친 후 의사는 뼈엔 이상이 없는데 확실치는 않으나 척추를 받히는 근육이 순간적인 충격에 의해 이완돼 탄력을 잃은 게 원인인 것 같다며 꾸준한 근육강화 운동에 절식(節食)과 조심 외엔 이렇다 할 치료방법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딱히 치료 방법이 없다는 말에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순간 심한 무력감이 엄습해 왔다.그 뒤로 하루 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몇 번이나 조기 귀국할까 생각해 봤지만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나는 물론 아내의 얼굴에도 웃음이 사라졌다.체중을 최대한 줄이라는 의사의 권고에 한 달 남짓 만에 무려 10kg이나 감량했더니 허리가 28인치까지 갔다.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흡사 남 같이 보였다.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만 지나가는데 어느 날 아내가 쑥뜸을 한 번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길래 단박에 정신 없는 소리 말라고 면박을 주고 말았다. 그러다 며칠 지난 어느 날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말처럼 아내에게 쑥뜸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하자 순간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다.요즘 쑥은 받침이 있지만 당시는 쑥 가루를 손으로 비며 상처부위 언저리에 적당히 놓고 불을 붙여야 했기 때문에 뜨거운 건 말할 것도 없고 피부에 심한 상처를 남기는 게 보통이었다.뜸 시작 후 5일째 쯤 되자 통증이 조금씩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그리고 쑥뜸이 계속됐다.두어 달 후 10년 넘게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허리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몸이 완전히 정상을 되찾은 것이다. 그 때 느낀 삶에 대한 의욕과 희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돌팔이가 나를 살려주었다는 말로 아내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완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셰난도아였다.미국생활에서 처음으로 하루 30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자동차로 다녀왔다.그 날 여행이 내 인생 제2의 출발이었다.처음 그 산을 찾던 날 집을 나서면서 혹시 도중에 고약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50킬로미터 쯤 가다 도중 한 언덕배기 마을에서 차를 세웠다.그 마을 이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와렌톤(Warrenton).저 멀리 겹겹으로 아스라히 펼쳐지는 애팔래치아산맥 줄기가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였다. 부드러운 산세가 마치 나의 고향 산과 비슷해 보였다.10여 분 쉰 뒤 단 숨에 공원입구까지 내달았다.그 때 워싱턴에서 셰난도아까지 가는 길 옆 농촌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울창한 수목이 하늘을 가린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산길을 달리며 선물로 받은 흡족함과 즐거움의 감동은 지금도 나의 머리 속에 간직돼 있다.그 뒤 그 산 길을 수 십 번 찾았다.숲 속 여기저기에 취사시설이 설치돼있는 셰난도아공원은 주말 가족 소풍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이따금 회사 일로 뉴욕에 출장갈 때 주말이 끼면 토요일 셔틀 비행기로 워싱턴 네셔널공항(현 로널드 레이건)으로 가 공항에서 차를 빌려 서쪽 산 너머로 황혼이 번지기 시작할 때까지 그 산길을 달린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그리고 1년 뒤 귀국하기까지 연말 휴가 때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를 두번이나 왕복했다.하루에 위싱턴에서 플로리다까지 1300킬로미터를 달린 적도 있다.   

 


난 인생 마지막에 가고싶은 몇 곳을 들라면 반드시 셰난도아를 포함시킨다.내나라 땅이 아니지만 그 곳은 내 마음 한 구석에 선명하게 각인돼있다.그 산은 한창 일할 젊은 시절 한 동안 실망에 빠져 삶의 의욕마저 상실했던 나에게 가장 강하고 확실하게 재기의 힘과 의욕을 확인시켜 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귀국한 뒤에도 일요일 오후엔 어김없이 셰난도아 비데오 테이프를 틀곤 했는데 애비 마음을 알리 없는 아이들은 "아버진 또 셰난도아네"라고 놀렸다. 회사퇴임 후 기회만 닿으면 드넓은 미국과 캐나다 대륙 사방을 자동차로 누볐다. 몇 년에 동안  지구 세 바퀴 거리를 뛰었다.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역정에서 가장 값진 소득은 여행이었구나 싶다.

 

이곡  권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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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난도아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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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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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서 셰난도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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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 아래 평원은 남북전쟁 때의 전쟁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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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안 도로. 자동차 속도 시속 45마일(72km로 제한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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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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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공원은 참나무가 가장 많다. 대부분 중국 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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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산군(위키피디아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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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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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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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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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든 잎 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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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등성이로 이어지는 길(위키피디아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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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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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 같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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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은 피드몽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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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산세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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