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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아틀리에

작가 김세영 조회수 139 추천수 0 등록일 2017-05-20

지역 : 서울특별시 > 성북구 > 동선동 >



권진규 아틀리에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3호 유산이라서 알게 됐다.

한 달에 한 번만 개방하는데, 그것도 미리 신청해 사람수가 적으면 취소한다.

4월에 신청했다가, 신청자가 적다고 퇴짜맞았다. 5월에 다시 도전해 방문했다.

 

그는 이름은 잘 몰라도 얼굴 조각상을 보면, 아! 그거 만든 사람이라 할 것이다.

고불고불한 동선동의 주택가 깊숙이 자리한 권진규 아틀리에를 드뎌 들어갔다.

한성대 입구 1번 출구로 나와서 걸어가야 한다.

권진규 아틀리에가는 길에 있는 철학관들이다. 일생동한 한번도 내 운명을 점쳐본적이 없다.

천관선녀 또는 매화부인 예언가라는 팻말이 재미있다. 들어가볼까 해도 어색해 못 들어가겠다.

나중에 생각하면 복잡하지 않은데, 사실 좀 헤맸다. 이제부터는 길에 그림으로 가이드가 있어 안심이 된다.

층계를 오르면 바로 나올 줄 알았건만, 이런 골목을 다시금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보라색 문으로 칠한 곳이 권진규 아틀리에이다. 이곳은 권진규가 직접 지은 작업실이라고 한다. 

 

그는 테라코타와 건칠기법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 조각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테라코타야 진흙을 구워만들었다는 의미일테고, 건칠기법이 무엇인지 하고 찾아보니 

옻칠, 포, 삼베등을 수차례 반복하여 기본적 형태를 완성시키는 기법으로, 크기 대비 가볍고 질기다.

그래서 어려운 곡선을 표현하는데는 건칠기법이 좋다고 한다. 

문으로 들어서면 마당이 나오고, 오른쪽이 가족들이 거주했던 살림채이고, 왼쪽 끝으로 들어가면 그의 작업실과 그만이 작업하는 조그마한 방이 나온다. 

나도 조각가 권진규에 대하여 잘 몰랐는데, 사진의 조각품을 보고 이분이구나 했다. 이곳은 그만이 사용하는 주택의 구석에 자리한 그의 개인방이다.

그의 살았을 당시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 권진규 아틀리에이다.

천재이자 비운의 조각가로 불리는데, 나는 이런 수식어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왜 천재라고 붙이고, 왜 비운이라고 하는가. 과연 당사자는 좋아할까 하고 말이다.

그의 대표작 <자소상>이다. 자기 인생을 이 얼굴에 겹겹이 응축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사망시점인 1973년까지 그는 이곳에서 살면서 작업을 이어갔다.

그가 조각한 자소상은, 당시 조그맣고 마른 한국인의 모습보다는 다소 모던하 세련되었다고 생각들었다.

그리스 조각상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생겼을까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당시 조각가들이 이상적인 근육과 인체의 비율로 조각을 했을 뿐이란다. 왠지 이것에서도 그런 느낌이다.

그는 고려대가 소장하고 있는 자신이 조각한 자소상을 본 이후 돌아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방안에서 내다본 모습이다. 방의 왼쪽이 그의 작업실이다.

그의 작업실인데, 이곳은 작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서 그런지 천장이 2층으로 높다. 

왼쪽의 층계로 올라갈 수 있는 상단에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관해 놓았었다고 한다. 

왼쪽으로 층계가 있고, 그는 아마 이렇게 가운데 앉아서 작업을 했으리라 하고 꾸며놓은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그냥 일반 관광객이 아니라 미술 관계자 같았다.

권진규 아틀리에와 문화예술사업을 연계하여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촬영하면서 엿들었는데 재밌었다.

작품명 <휴식> 1968년 1월작이다.

타이틀은 휴신인데, 왠지 휴식을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다.

웅크리고 있어 목과 등이 아플것 같기도 하고, 

조각상이지만 상자위에 올려있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인간이 작은 공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같다.

그의 작업실 오른쪽의 벽돌 구조물은 우물이다. 흙작업을 위해 우물을 팠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란꽃 카라는 학예사의 설명으로는 그가 좋아하는 꽃은 해바라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다놓으려고 했건만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노란꽃을 구입했다고 한다.

5월 4일이 그의 기일이라서, 5월을 기념하여 올려놓은 꽃이라고 한다.

작품명은 <마두>인데, 말의 머리라는 한자이겠지. 이런 제목도 거의 사라졌다. 

한자로 쓰인 말들을 보면 이제 좀 옛날 것들 같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기거했던 살림채는 오늘날 관련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실내의 안과 밖에서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으며, 

예술가 입주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5월의 봄인데 권진규의 집 안에 있는 나무는 잎이 하나도 없다. 쓸쓸해 보이면서도 뭔가 태동할 것 같은 기대감이..

 

그는 1973년 5월 2일 고려대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고 개관식을 보고, 폐관할때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집에 왔다.

그 다음날 5월 3일에도 고려대에서 자기 작품을 하염없이 쳐다봤다고 한다. 그 다음날 5월 4일 목을 메서 자살했다.

 

인생이 보장된 일본에서의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왔다. 아마 그것이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마음이 편하기 위하여 마음이 편한 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의 <자소상>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방문 뒤의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다. 

참고로 화가들이 그리는 자신의 그림은 <자화상>, 

조각가들이 만드는 자신의 조각상이 <자소상>이라고 한다.

무엇때문에 스스로 생을 버렸을까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관점을 달리하면 현생을 버리고, 다른 생으로 떠난것이리라. 배울점이 있다.

<인생은 꿈이다 La Vida es el Sueño>라는 스페인어 격언이 생각난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어느 집의 벽이다. 봄날에 나무와 페인트 색깔이 잘 어우러진다.

 

다음번에는 춘천의 권진규 미술관을 찾아가 봐야겠다. 그는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1949년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교에서 앙투안 부르델의 제자인 시미즈 다카시에게 배웠다.

세계적 조각가인 부르델에서, 시미즈 다카시에서, 권진규로 이어짐을 금번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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