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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와의 인연, 엘 그레코

작가 이영자 조회수 165 추천수 0 등록일 2017-06-19

백과 사전 보기 엘 그레코, 엘 그레코 박물관   (항목을 클릭하시면 백과사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 : 스페인 > 톨레도



에스파냐의 톨레도와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엘그레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왜 그리스인 멀고 먼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여 외지에서 30년을 보냈을까.

그동안 자세히 몰랐었는데, 금번 여행을 하면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생전에 본명인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로 불리기를 원했으나 실패했다.

사진에서 엘그레코 위에 써 있는 것이 그의 본명이다. Domenikos Theotokopoulos.

엘그레코 박물관에 도착했다. 저택은 내외부가 예쁘게 꾸며져 있다.

오늘날의 박물관은 그가 살았던 저택의 건물은 아니다. 

다만 그가 생을 마감했던 17세기 초에 살았던 곳의 옆자리라고 전해진다.

현 박물관은 19세기 베니뇨 데 라 베가-잉클란 후작이 조성하였다. 

그가 살았던 환경과 유사하게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저택은 오늘날 유대인 지구에 위치해 있으며, 1911년 개관하여 1942년 국가 소유가 되어 관리된다.

본래 있었던 유대인 지구의 오래된 건물을 그가 살았던 16세기에서 17세기초까지의 모습이 

묻어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개조하였다고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후작의 후원 덕분이다.

중정이다. 오른쪽의 우물은 과거에 물을 길어 생활했던 모습이 상상되는 듯하다.

박물관은 건물이 사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가운데 정원이 있는 형태이다.

 

 

톨레도는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 세력에게 지배당했을 때 번성했던 곳으로,

이슬람 세력이 한때 소국들로 분리되었을 당시 톨레도 타이파(Taifa) 였다.

그러다가 1086년 재정복되어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서 번생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톨레도의 타이파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자는 드문 것 같다.

그래서 사진속의 이슬람 여인의 모습으로 오버랩되어 옛 정취를 느껴본다.

돌기둥과 나무 조각이 결합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정의 기둥 장식으로서 당대 세공 기술이 엿보인다.

부엌이다. 그릇들과 주변 풍경이 당대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과거와 유사하게 꾸몄다고 한다.

부엌 한켠에 자리한 공간으로 바닥에 문이 있는데, 보관창고이다. 

창가에 책이 펼쳐져 있어, 이곳에서 독서를 했나 했더니 요리책이다. 

이 방에는 12사도들이 개인별로 쭉 그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누가 보아도 이건 엘그레코가 그린 것이구나 하는 강렬한 특징이 있다. 

일단 인물은 다 길다. 둥그렇거나 뚱뚱한 인물은 없다. 

길쭉길쭉하여 임의적으로 그래픽으로 세로픽셀을 늘려놓은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그를 매너리즘 화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용어는 사실 19세기 미술평론가가 사용한 말이다.

르네상스 시기 이후에 왜곡되고 그리는 방식이 기교적으로 치우쳤다하여 부정적 의미로 붙여졌지만, 

오늘날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바로크 회화로 접어들기 이전의 사조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드로 성인의 눈물>(c.1587~1596)년작으로 눈물의 묘사가 특히 유명한 그림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유포되어 있는 엘그레코 그림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 성인 어깨 위에 엘그레코 서명이 있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 <톨레도 전경 View and Plan of Toledo>이다. 

19세기의 인상주의와 폴 세잔에게도 영향을 준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크 여성 화가였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마리아 막달레나> 그림이다. 

엘그레코 미술관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워낙 당대 여류화가가 없다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엘 그레코를 매너리스트 화가라고 부르는 이유 중의 하나인 해골 그림이 포함된 회화이다.

해골 그림이 들어 있는 것은 배너티 즉, 인생의 허무함이 깃들어 있는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 

파란색의 색채를 보니 컬러풀한 베네치아가 생각난다. 엘그레코는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왜냐면, 그리스가 당시 베네치아 지배를 받아서였다.  

그런데, 활동은 에스파냐에가서 했다. 왜냐면, 베네치아가 당시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아서였다.

당시 염료는 무지 비쌌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선 자유롭게 색채를 구사했다. 

왜냐면, 해상무역의 거점인 베네치아는 염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엘그레코 박물관의 지하 동굴인데, 이 저택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발굴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유대인 동굴이라고 한다.

 

이곳은 유대인 지구의 특성이 엿보이는 건물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어찌보면 유대인과 이슬람 세계의 특성이 유사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1541년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비잔틴 문화에서 그림을 배우고,

1567년 베네치아로 건너가 그림을 그리고, 로마에서의 숙성기를 거쳐,

1576년 에스파냐 톨레도에 정착해 화가로 살다 1614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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