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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화가, 블라맹크

작가 이병애 조회수 235 추천수 0 등록일 2017-07-17

지역 : 서울특별시 > 서초구 > 양재동 >



예술의 전당 한가림디자인미술관에서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이 한다.

지금은 한 여름인데, 이 작가의 특징은 끊임없이 하얀 눈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흰색의 화가>라고 제목을 붙여보았다.

그가 지대한 영향을 받은 세잔은 하얀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천박하고 투박하여 질이 떨어지는 색깔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건 세잔의 생각이다.

포스터만 언뜻보면 일반적으로 접하는 인상파네 라고 할 수도 있고,

광고에서는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를 이끌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전 11시에서 밤 8시까지 한다. 입장 전 줄 서 있는 모습이다.

학생들이 학교 숙제가 있는 듯 단체로 보였다. 블라맹크전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첫번째 안경 쓴 학생의 진지한 모습과, 세번째 기분좋게 웃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 다 좋아 보인다.

11시 도슨트를 한다. 나는 도슨트(해설가)를 따라다니고, 또한 오디오 가이드도 들었다. 

어렸을 때는 외국인들이나 외래어 명칭을 책에 써 있는 한글로만 보고 암기했었는데,

요즘은 원어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생각한 것보다 다른 경우도 많다. Vlaminck 처럼. 

입구에 있는 분 포즈가 모델같다^^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고, 마지막 디자인관만 개방이다.

이름 아래 1907-1958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누가 보면 생몰연도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는 1876년에 태어났다. 1907년은 작품을 그린 시기로, 그는 정규 화가 교육을 받지 않았다.

마지막 관인 석판화 실이다. 촬영하면 안 되어 경계선에서 찍은 장면이다.

도슨트 설명 및 오디오 가이드를 들은 바 설명을 듣는 것은 유익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그것을 흡수하지 말고, 자기 주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

전시가 끝나고 디자인관 입장하는 경계에 세워져 있는 그의 말이다.

<난 아무것도 원한 것이 없었다. 인생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내가 본 것을 그렸다.> 블라맹크 왈

 

<원한 것이 정말 없었겠는가.. 자기가 노력하여 원한 것을 얻었건만, 인생이 주었다고 표현했겠지..

할 수 없는 것은 어차피 못하며, 원하지도 말아야 한다. 각자 본 것을 그려도 각자 다 다르게 표현된다> 나의 해석^^

전시관과 마지막 코스인 디자인관의 경계선이다.

요즘은 전시 문화가 발달해서, 단순히 전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이벤트를 만들어 사람들이 재미있고 또한 나중에 기억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한다. 

블라맹크의 그림들은 동영상으로 변하도록 제작되어 있으며, 직접 대형붓을 들고 채색이 하라고 메세지가 뜬다.  

그림으로 동영상을 제작하여, 직접 채색을 유도하도록 하였다. 요즘 유행하는 체험 학습의 일종이다.

그런데 이렇게 맘대로 채색하라고 하니, 앞에 전시관에서 본 블라맹크의 느낌이 안난다. 

그의 유언이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던 화가였으나, 그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고,

반면에 작가였다. 책도 여러권 냈다. 

그의 쏟아져내릴것 같은 눈길을 동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길을 걸어가듯이 쉴새없이 움직인다.

여름에 하얀 눈길을 걷는 듯하여 재밌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하다.

그는 눈을 그리고 흰색을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여름에 스케치를 해놓고, 실내에서 눈을 그리기도 했다 한다.

땅에 있는 눈은 그냥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이 아니라, 쏟아져 내릴것 같은 속도감을 내어 표현한 그림들도 많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의 사선 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기도 하다.

현대에서 스폰서해서 그런지, 전시관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휴식공간이다.

최초로 세상 밖에 나온 그림이라고 한다. 블라맹크 가족이 소장하고 있는 사일로(silo)라는 그림으로, 

밀밭을 표현했다. 그는 반 고흐의 두꺼운 질감에서 묻어나오는 감성에 큰 영향을 받았다.

세잔의 영향과 야수파의 색채가 어우러진 모습의 정물화이다. 이런 그림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세잔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들에게 블라맹크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선입관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 같다.

그의 그림들을 둘러보면서 여러 화가들이 스쳐갔다.

경계선을 죽죽 그어 그린 정물화와 풍경에서는 세잔이 보이고, 

태양빛을 머금으면서 작가 내면이 드러나는 밀밭에서는 반 고흐가 보이고, 

위 사진에서 오른쪽 뒤쪽의 모자 쓴 여인 얼굴에서는 라울 뒤피도 보이고,

그러면서도 선을 사용함은 조르부 브라크도 보이고, 다소 추상적인 칸딘스키마저 보인다.

짬뽕화가 라고 생각도 했다. 아마 그것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상식에 덧붙여진 생각이리라.

충분히 위험한 생각이다. 

 

전시관을 나와서 홀에 공개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전시 작품을 보았다.

지나가는데 이것이 눈에 띄었다. <닭의 장례식>이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얼굴들만 댕강댕강. 옆에 얼굴보다 더 큰 소주병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왼쪽의 작품명은 <작은새>인데, 지구보다 더 큰 어마어마하게 큰 새로 보인다^^


오른쪽의 작품명은 <집>인데, 내가 주관적으로 보기에는 무시무시하게 상막한 집이다.

정문에 시계가 있어서 언제든지 시간을 체크당하는 어린이들의 심리가 담겨있는 듯하고,

집은 전체가 빨간색으로 거칠게 칠해져 불안해 보이며, 

오른쪽에 그나마 숨통이 트일 듯하게 자그만한 파란 문이 쬐금 열려 있다. 

삿갓 모양의 오페라 극장 아래에 있는 베토벤의 조각상이다.

가까이 보면 둥그런 관들이 줄줄이 붙여 있어 좀 징그럽기도 하다.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 보는 것은 천지차이인 경우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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