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이전 여행기 다음 여행기

타오르미나(Taormina)/이오니아해의 보석 1

Taormina

작가 자유를 향한 열망 조회수 207 추천수 0 등록일 2017-09-12

지역 : 이탈리아 > 시칠리아 > 메시나 > Taormina, 이탈리아 > 시칠리아 > 메시나 > Taormina



타오르미나 387.jpg

 

타우로산 절벽 고대 시가지

 

오르미나 (Taormina)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문서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스 역사학자 디어도 로스 시켈로스 (Diodoro Siculo)가 쓴 역사 총서는 기원전 60년과 30년 사이 역사를 저술했는데,

 BC753년경, 그리스 Calcidis 가 알칸타라 강에 상륙하여,  낙소스(Naxos)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농사와 가축을

기르던 사람들이 타오르미나 요새에 살고 있었다고 기술했다.
BC403년 낙소스가 멸망하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타오르미나 절벽 위로 이주했다. 타오르미 나는 초기에 낙소스(Nxos)로 불렸다.
해발 250m 타우로 산 ((Mount Tauro) 절벽 위에 세워진 타오르미 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꼭 가야 할 목적지로 정해놓고 있는 곳이다.

 

 

타오르미나 370.jpg

 

타우로 산 중간 해발 200m 위치하는 고대 시가지

 

 

타오르미나 226.jpg

 

고대 그리스 극장 잔해

 

무도 많은 역사! 너무도 많은 이야기. 이오니아 해의 눈부신 풍경  속에 펼쳐진 타오르미나는 이런 곳이다.,

 그리스 고대 건축가들은 기원전 3세기에 타우로(Taur) 산 자연암반 100,000㎥ 인력으로 파내고 극장을  지었다

. 마치 자연이 그들의 일부인 것처럼, 중요한 건물을  에트나 화산과 낙소스만의  눈부신 풍광을 빛과 공기가

 섞인 극장 건축과 통합했다. 아름답고 본질적 예술가치를 더하는 기념비적인 극장을 세웠다. .

 요한 볼프강 괴테 (Johann Wolfgang Goethe)는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극장 관객은

결코 그 앞에서 눈을 뜨지 못했다 고 적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늦은 저녁, 주변이 어두워질 때까지 

와인 한 잔을 들고 멀리 떨어진 에트나 화산을 바라보다가 거실로 들어왔다.  

 

 

타오르미나 015.jpg

 

내가 투숙한 호텔 베란다에서 바라본 에트나 화산

 

에트나 화산은 유럽 남부에서 가장 높은 3,329m 산으로 이태리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중 한 곳이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유엔은 10년 화산으로 지정했다 화산 국제협회(IAVCEI)가 인구 밀집

지역에 근접하여 대규모로 분출하는 16개  화산을 특별한 연구 가치가 있다고 지정한 것이다 자연재해

심각성을 줄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90년 유엔기금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10년 화산으로 명명되었다.

  에트나는 4개의 분화구가 있는데 중앙 분화구, 동북 분화구, 남쪽 분화구, 1968년 새로운 분화구로

 고대 분화와 현대 분화로 나누고 날씨는 수시로 변한다 눈은 여름까지 내린다.
에트나 화산 주변은 비옥한 화산 토양으로 포도원과 올리브나무 나무가 무성하다 낮은 경사면과

드넓은 카타니아 평원은 시실리아 곡창지대이다. 

 

 

타오르미나 053.jpg

 

사라센 (Saracen) 성

 

우로 산 정상 397m에 세워진 사라센 카스텔 (Castello saraceno) 성은  원래 그리스 시대 아크로폴리스 가

있던 자리로  이슬람에 함락된 후 절벽 외곽을 따라 성을 복원해서 사용했다.  1079년 노르만의 포위 공격으로

  항복했다. 현재 성채는 내부가 일부 붕괴되고  폐쇄된 상태로  출입할 수 없다 

 

 

타오르미나 085.jpg

 

슬람 사라센 성채  건너편 계곡 언덕에 위치한 마을은  전망이 뛰여 나다 

 이곳에서 타오르미나 구시가지와 고대극 장, 에트나 화산, 이오니아해 눈부신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전날 약간 늦은 시간에 고속도로에서  타오르미나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를 거치지 않고 외곽 도로를 통해서

구불구불한 좁고 가파른 도로를 올라 미리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했다  산 정상 광장은  등 서남 쪽 방향으로 조망할

수 있는 넓고 툭 터진 시야를 제공한다.

 


타오르미나 050.jpg

 

 

라노(Milano)에서 시작된 나의 이태리 여행, 주요 목적지는 시실리아 타오르미나 였다.
잉크 빛 이오니아 해(Ionian)와 에트나 화산, 절벽 위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이 어우러진 한 장의

사잔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바다를  등진 절벽 위 고대 그리스 극장을 보고 싶다는 염원은

,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에트나 화산이 폭발해서,  검붉은 용암이 흐르고. 하얀 화산 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풍경을 보면서

 호텔 베란다에서  그 누군가와 함계 와인을 마시리라 다짐했다. 호텔 예약도 에트나 화산을 가장 잘 관망할 수

있는 타오르미나 성 부근  Villa Angela  호텔  에트나 스위트룸으로  정했다.

 

 

타오르미나 031.jpg

 

침식사와 차 한 잔을 마시고 절벽 아래 고대 시가지를 바라보다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천천히 차를 몰고 내려 같다

. 높은 바위산 허리에 나선형처럼 생긴 도로를 내려오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다

 어제 본토 칼라브리아 빌라 산 조반 나에서 페리선에 차를 싣고 메시나에 도착해서 A18 고속도를 이용하여

 타오르미나 톨게이트를 놓치지 않으려 신경 쓰면서 가마득한 절벽 위에 위치한 호텔까지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오르느라 주변 풍경에 신경 쓰지 못했는데, 오늘 여유를 갖고 바라보는  풍경에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름답다.
천천히 내가 운전하자 뒤따르는 이태리 성질 급한 차량들이 도저히 추월할 수 없는 곳인데도 앞 찌르기를

시도해서 차를 세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무조건 주차했다 카메라를 꺼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타오르미나 074.jpg

 

산비탈에 자연 경사면을 해치지 않고 지어진 집들

세 시대 그랜드 투어는 보통 프랑스에서 시작되여 파리에서 잠시 머문 후 이태리로 이동하는 루트였다. 

기원은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상류층 귀족 자재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

견문과 역사를 알기 위해 2~3년간 이태리와 프랑스 유적지를 둘러보는 여행으로, 최종 목적지를  로마에 두었으나,

 일부는 폼페이와 시실리아까지를 여행 스케줄에 넣었다. 18세기부터 이태리와 시실리아를 대표하는 여행지 

 중에서 제노바,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시에나, 그리고 최종 목적지 로마에 도착하는 여정으로.

일부는 폼페이와 시실리아 주도 팔레르모(Palermo)를 제외하고  타오르미나 까지만  여정에 넣었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 역사를 알고,   인문학적 심미안과  교양을 얻었으며,  여행 관행, 기본 틀을 만들었다.

 당시 그랜드 투어 경험자는 대단한 대우를 받았다. 그랜드 투어에는 전문 학식을 갖춘 선생 2명과 시종 2,3명을 대동했다.

 재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현지 예술품과 골동품을 구입하여 본국으로 보냈다.  

 현대 관광여행은 그랜드 투어 패턴에서 파생된 것이다.

                 

 

타오르미나 076.jpg

 

 

1787년 5월에 타오르미나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을 방문한  볼프강 괴테는 풍경에 깊이 매료되여 작은 천국이라고 말했으며

, 1885년 모파상은 그의 작품 방황하는 인생에서 누군가가 시실리아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주저 없이 타오르 미나에서 보내라, 

썼다 수시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에트나 화산과 분화, 잉크색 투명한 이오니아 바다 풍경,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고대 유적은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넣었을 것이다  .

 


타오르미나 077.jpg

 

오르미 나는 17세기 후반부터 일부 예술가와 작가들이 수려한 풍광과 온화한 날씨에 이끌려 오래 머물면서 

그리스(Greeks) 로마(Romans), 비잔틴(Byzantines), 사라센( Saracens) 노르만(Norman)이 남긴 고대 유적과 

역사적인 건물을  보기 위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이곳을 통치하고 있던 노르만은 관광지로 널리 알렸고  회의와 방문, 체류하기 위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1920~30년대 여행자들은 오늘날과는 다른 여행 패턴을 보였는데, 가을에 도착해서 이듬해 5,6월까지 머무르다

떠나는 긴 체류형 여행이 주를 이뤘다. 심지여 1,2년까지 체류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행정보는

 여행기와 그림을 통해서 습득했고,, 지인이 추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행은 1950년 이후 급격히

 변했다. 열차의 발달과 항공기 대중화로 일 년 열두 달 여행할 수 있는 여건으로 바뀌었다.

 

 

타오르미나 080.jpg

 

명하고 온화한  타오르미나 날씨는 자연이 준 축복이었다. 숨 막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본 사람들은 

 단기 체류자에서 장기 체류자로 바뀌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그랜드 투어 위대한 여행자들은  장기로 머물기 위해 

 거주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1770년 에든버러 왕립 회원이 자 작가 패트릭 브리 돈( Patrick Brydone) 이 왔고 1787년에 J.W 괴테, 가 왔다 타오르미

 나는 국제 거주지로써 평판이 절정에 다다랐다. 여행기와 구전을 통해 알려지면서 타오르미 나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인들이 왔으며 특히 부유하고 고귀한  영국인들이 몰려오면서 장기 거주할 주택과 별장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북미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북유럽 발틱해 연 국가,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인들이

 겨울을 피해 휴양차 이곳에 오기 시작했다.

 

 

타오르미나 083.jpg

 

 

무렵,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권위 있는 인물들이 타오르미 나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트루맨 카포네(Truman Capote),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ì), 알렉산더 뒤마( Alexander Dumas)

가 브니엘 포레(Gabriel Faure), 아나 롤 프랑스(Anatole France), 안드레 길드(Andrè Gide),

 폴 클리어(Paul Klee),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D.H 로렌스(D.H. Lawrence), 가이드 말 파사트(Guy de Maupassant),

 블라디미르나 본 코브(Vladimir Nabokov),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등 화가와 작가들이 방문했다.
음악가 중에는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네오나 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니키타 나마갈 로프(러시아 피아니스트, Nikita Magaloff),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연극 영화, 배우와 감독 중에는  이태리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

 스웨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에두아르도 드 필리포(이태리 배우, Edoardo De Filippo),마를레네 디트리히(미국 배우 Marlene Deitrich),

 엘레오노라 듀스(미국 배오, Eleonora Duse), 페데리코 펠리니(이태리 영화감독, Federico Fellini,)

그레타 가르보(미국 배우, Greta Garbo), 케리 그랜트(미국 배우, Cary Grant),

 마르첼로 마스터로 야니(이태리 배우, Marcello Mastroianni), 그레고리 펙(미국 배우, Gregory Peck),

 타이론 파워(미국 배우, Tyrone Power) 등...
그 외 스페인 왕,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알치데 데 가스 페리(이태리 왕국 마지막 총리),

 독일 황제 빌헬름 2세( Kaiser Guglielmo II), 스웨덴 구스타브 국왕, 스페인 국왕 후안 카롤로스,

 넬슨 록펠러 미국 부통령, 등 끝없다....

 

타오르미나 091.jpg

 

오르미 나는 고대 유적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예술에 영감을 얻는  여행자들이 꿈꾸는 곳이다

. 보헤미안적인 취향을 가진 여행자들이 타오르미 나에  많이 왔다.
하루 종일 해안을 걸어도 좋고, 산비탈 와이너리에서 포도향기를 맡으며 산책을 해도 좋다. 고대 극장에 앉아

에트나 화산과 이오니아 해를 보면서 멍하게 하루를 보내도 좋다.
그리고 좁은 골목을 걸으며 구수한 빵 냄새와 커피향을 마셔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는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독일에서는,  이민 현상이 나타났다. 대담하고 모험심이 넘쳤던 사람들과

단순히 현실에 절망적인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살던 곳을 떠났다 당시에는 외국으로 이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재정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대부분 미국으로 향했는데, 그러나 이태리를 택한 독일인도 많았다

 괴테가 쓴 이태리 여행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 지중해 날씨를 찾아 시실리아가 가장 선호하는 이민지였다.

 특히 타오르미 나에 많은 독일인들이 정착했는데, 그것은 화가   오토 겔랑(Otto Geleng)과 사진작가

 빌헬름 폰 글루텐(  Winhelm von Gloeden) 의 영향이 컸다.  역사적으로  1087년 노르만이 아랍 사라센을

 몰아내고 시실리아 전체를 점령했다. 노르만은 종교 자유를 주고 종소리와 교회 건축을 허용했다.

수도원과 성당 건축을 위해 땅을 무상으로 제공도 했다. 노르만의 지배는 13세기 수년 전에 끝났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시실리아에 많이 정착했다
혹시 타오르미나 여행 중에 독일식 단어가 들어간 호텔이나 간판을 본다면 그 당시 이민자의 후손일 공산이 크다. 

 

 

타오르미나 367.jpg

 

대 그리스 원형극장 절벽에서  낙소스까지 이어지는  해변 풍경과 3,329m 에트나 화산이 분화하는

모습은 괴테가 말한 대로 작은 천국으로.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타오르미나 255.jpg

 

고대 극장 맨 위 산언덕에서 메시나 방향을 향해 바라본 이오니아 바다는  눈이 부실 정도로 시야가 끝없다.

 잉크색 바다와 해안 풍경 이 탁 트인 전망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토록 아름다운 땅에 드리운 역사의 시련에 가슴이 시리다.

 

 

타오르미나 299.jpg

 

곳 해변에서 영화 그랑블루( Le Grand Bleu) 가 촬영되었다.
소년은 어린 시설 잠수 사인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바다와 돌고래를 가족으로 여기며 외롭게 성장한다 

 유일한 마을 친구 엔조와 잠수 실력을 겨루는 경쟁상대이자 단 한 명의 친구로 우정을 다진다 소년 자크는

 유일한 안식처인 바다와 돌고래  그리고 엔조와 성장해 간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

프리다이빙 챔피언 엔조의 초대로 재회하게 되는데, ...  

  


타오르미나 영화제포스터.jpg

 

타오르미나 영화제(Taormina Film Fest)

 

리스 고대 극장에서 열리는 메시나와 타오르미나 국제영화제는 1955년부터 열리는  역사적인 영화제로

 1971년부터 타오르 미나에서 영구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국제 사진예술 연맹(FLAP) 이 인증한 A 급 축제로

 이태리 영화 축제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오스카상에 필적하는 영화제로 해마다 이태리와 외국영화 중

최고 작품을 선발한다. 지금까지 수상한 배우와 감독을 간단하게 열거하면  -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콜린 퍼스, 말란 브란도, 리처드 버튼, 톰 크루즈, 숀 코넬리,헨리폰타 찰톤 헤스톤,

 이브 몽탕, 케리 쿠퍼  -감독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존 휴스턴, 마틴 스콜세지,

 아키라 구로사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타와 감독이 참가했다.
시상식과 영화 상영은 그리스 고대 극장에서 열린다. 시간 내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

 


타오르미나 297.jpg

 

이솔라 벨라 해변

이솔라 벨라  해변 (Isola Bella) 은 고대 극장 절벽 아래 해변에 위치한다 이오니아 해의 진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곳으로 

 이솔라 벨라라는 작은 섬이 있다. 1806년 시실리를 다스리고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가

 섬과 부근 지역을 인근 마을에 기증했다. 1890년 영국 정원사 피렌체 트레블 리안(Florence  Trevelyan) 이 사들여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었다. 희귀한 관목과 잔디를 심어 식물원을 만들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희귀한

 도마뱀이 이곳에 많이 산다는 것이다. 그녀가 죽고 1990년 타오르미나 시에서  세계 자연보호 기금 후원으로 구입하여,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희귀한 열대식물과  해변은 투명하기 그지없이 깨끗하다. 

 

 

타오르미나 311.jpg

 

타오르미 나는 이태리 신혼커플이 선택하는 최고의 신혼여행지이다

 

타오르미나 380.jpg

 

해발 205m 절벽 위,  타오르미 나는 난공불락, 요새였다. 3면은 깊은 계곡으로 바다에 닫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오르미 나는 완벽한 방어를 위해 그리스 방어 시스팀에 따라 북쪽과 남쪽에 방대한

석벽을 추가로 쌓았다. 여기에는 3중 차단 벽과 도시로 들어가는 유일한 2개의 성문이 포함되여 있었다.
오늘날에도 고 대문을 볼 수 있다

 


타오르미나 097.jpg

 

 

타오르미나 성당과 두오모 광장 (Piazza Duomo)

 

새 성당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대성당은 성 니콜라스에 헌정된 작은 고대교회 유적지에 1,400년 전에 세워졌다.

 본당은 3개의 라틴 십자가 구조를 갖고 있고 양쪽에 6개의 작은 제단이 놓여있다. 관심을 갖는 중요한 모티브는

 1636년 복원된 현관문 대리석 석판에 르네상스 문양으로 새긴 장미 창문이다.  세인트 니콜라스(Saint Nicholas)는

 타오르미 나의 수호성인이다
대성당에 보존된 가장 귀중한 물건은 비잔틴 마돈나이다. 1945~1948년 사이에 나폴리 건축가 아르민도 딜런에 의해

 성당은 완전히 복구되었다.
대성당은 1980년 2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마이너 대성당(Minor Basilica) 지위로 승격되었다

 대성당 광장은 지난날 오스카 와일드, 모파상, 알렉산더 두 마, 리처드 와그너와 요하네스 브람스 등

유명인사가 타오르미나 방문 시 즐겨 찾는 장소였다.  원형 분수는 1635년에 만든 것으로 중앙에

시의 상징 미노 타 우르(Minotaur) 가 새겨져 있다.

 

 

타오르미나 153.jpg

 

산 주세페 (ST Joseph) 성당

 

로크양식으로 지어져 세인트 조셉( ST Joseph)에게 헌정된 성당으로,  오른쪽에 큰 종탑이 있다,
성당 주요 제단은 타오르미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성막 아래에 마돈나가 연옥에서 영혼 위로 떠오르는 프레스코화가

 걸려있다. 성 요셉 제단 옆에는 나무와 유리항 아리가 놓여있고 금요일에 죽은 그리스도 조각상이 있다.
성당은 현재 천정 붕괴 위험으로 2015년 10월부터 닫혀있다.

                 

카카오스토리
목록보기 위로 스크롤 아래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