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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2_훈자로 가는 길

작가 고요한 조회수 338 추천수 0 등록일 2017-10-12

백과 사전 보기 라왈핀디, 훈자, 미국아프가니스탄공격, 파키스탄 탈레반, 말랄라 유사프자이   (항목을 클릭하시면 백과사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 : 파키스탄 > Gilgit Baltistan > Hunza



 

 

 


"배낭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빠지면 죽는다는 좋지 않은 의미의 블랙홀이 아닌,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그 매력에 빠져 오래 머물기 때문에 블랙홀이라는 단어가 붙은 건데요.

배낭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라 불리는 이곳들은 이집트의 다합, 태국의 빠이 그리고 파키스탄의 훈자입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자연보다는 건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여행에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블랙홀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더라도 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릴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블랙홀이라는 단어가 붙은 곳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여행기는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곳 중 한 곳으로 향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파키스탄의 훈자입니다.    



필자는 인도의 암리차르에서 와가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의 라호르로 향했습니다.

만약에 인도에서 육로로 파키스탄으로 국경을 이동하신다면 라호르를 꼭 들리시게 되실겁니다. 

라호르에서 훈자로 가는 방법은 조금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가는 길을 이번 여행기에 상세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훈자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시려고 하는 분들은 대표 공항 중 하나인 카라치가 아닌 이슬라마바드로 들어오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파키스탄 비자가 없으면 비행기는 타실 수 없습니다. 혹여 비자 없이 타시더라도 도착하시면 다시 날아서 돌아가셔야 합니다. 

파키스탄 비자와 관련된 정보는 저번 여행기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파키스탄은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꼭 현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찾으시고 많은 생각을 하시길 바래봅니다.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2014년 8월 여행기임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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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에서 야구장에 온 듯한 느낌으로 국기 하강식을 본 후, 미리 흥정을 한 오토릭샤 꾼을 만나 라호르로 향했습니다.

릭샤 꾼들은 처음에 16,000원을 불렀습니다만, 깎고 또 깎아서 필자와 동행을 합쳐 5,000원에 흥정을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인도와 예전에 한나라였다는 듯이 너무 닮아있습니다. 꼭 흥정을 하셔서 깎은 돈으로 식사를 하시길 바랍니다. 


미리 알아놓은 게스트하우스를 얘기하고 라호르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릭샤 꾼은 저희를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데리고 갔고

흥정한 5,000원을 내고 원래 게스트하우스로 가려고 하니 돈은 받지도 않고 천천히 하자고 했습니다. 

일단 릭샤 꾼의 말을 따라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고 방이 없어서 옥상에 매트를 깔고 자는데 1인당 3,000원이었습니다. 

그냥 원래 가려던 게스트하우스로 가려고 하니 개인당 4,000원 아니었냐며 갑자기 8,000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언쟁이 붙었고, 5,000원을 내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릭샤 꾼은 계속 우리를 따라왔고, 

따돌린 후 원래 가려던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짐을 푸니 그 릭샤 꾼이 주인장과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름이 끼쳐 이러다 일 나겠다 싶었고 결국 다시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더니 사람들이 다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밤이었고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사람들을 뒤로하고 바로 훈자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가려고 하니, 몰려있던 릭샤 꾼들이 똘똘 뭉쳐 버스가 없다고 했습니다. 

밤 중에 아주 먼 곳까지 피해서 숨을 돌리다가 경찰을 만났고,

상황을 설명하니 경찰분이 친절하게 다른 릭샤 한 대를 잡아 정류장에 갈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대우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릭샤 꾼들의 말과는 달리 버스는 매시간 많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몸이 피곤하고 파키스탄에 처음 들어왔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라호르에서 하루 자려고 했습니다.

다음날 라왈핀디로 가려고 했으나,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밤에 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만약에 이런 비슷한 일을 겪으신다면, 밤에도 버스가 다니니 너무 걱정하시지 말길 바랍니다. 

다만 밤은 위험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라호르에서 하루 주무시고 다음날 버스를 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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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라호르에서 훈자로 바로 향하는 버스는 없기 때문에, 라왈핀디 혹은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로 가셔야 합니다.

라왈핀디에 훈자로 가는 버스가 더 많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필자는 라왈핀디로 가는 대우버스 티켓을 12,500원에 구입했습니다. 

갑자기 대우버스가 나와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시겠지만, 파키스탄의 최고급 버스는 대우버스입니다. 

우리나라 예전 자동차회사의 대우를 기억하시는지요? 

한때 세계 10대 자동차업체 중 하나였으나 IMF 등등의 이유로 1999년에 망하게 되는데요. 

놀랍게도 대우가 여기서는 최고급 버스회사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로고도 같습니다. 왜 대우버스가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예전 대우에서 만든 버스를 타는 건가 싶었지만, 막상 대우버스에 오르니 그 예전 대우의 버스가 아니라 정말 깔끔하고 시설이 좋았습니다. 

에어컨은 기본이며, 놀랍게도 와이파이도 되고 무엇보다 승무원분도 타 있어서 음식과 음료를 주었습니다. 

안 좋은 일로 신경을 많이 쓰고 타서 그런지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천국인 것도 잠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승객 한 명 한 명 얼굴을 다 찍었는데요. 

전부터 말씀드렸다시피 파키스탄은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국가입니다. 

비디오카메라의 역할은 만약에 필자가 탄 버스가 테러를 당한다면,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비디오에 찍히면서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난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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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30분 정도 천국대우버스를 타니 라왈핀디에 도착했습니다.

대우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라왈핀디 대우버스 터미널에서는 훈자로 가는 버스가 없습니다. 

훈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대우버스 터미널에서 6km 떨어진 낫코버스터미널로 가야합니다. 

새벽에 도착하여 릭샤를 타려고 하니, 살인적인 가격을 불렀고 결국 1시간 30분을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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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오프라인 지도 어플을 다운받으시면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최첨단 대우버스 터미널과는 달리 조금 허름한 낫코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낫코버스 터미널이 있는 이곳, 라왈핀디는 파키스탄 펀자브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남서쪽으로 14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펀자브 지방에서 카이버고개를 거쳐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통로와, 

카슈미르에 이르는 통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교통, 전략상의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영국 식민지시대에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기지가 들어섰고, 

현재도 파키스탄 육군사령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왈핀디는 북쪽의 옛 시가지와 남쪽의 신시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 시가지에는 농산물과 여러 가지 소비재를 집산하는 노천시장이 늘어서 있고, 

신시가지에는 병영지구, 관공서, 고급주택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1959~1970년에는 파키스탄의 임시수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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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코버스 터미널의 겉은 허름해 보이지만, 이렇게 경비아저씨께서 보호를 해주십니다. 

기동성을 위해 근무복에 샌들을 신으실 걸 보니 더욱더 신뢰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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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기준 버스시간표입니다.

버스는 이슬라마바드에서 출발에 라왈핀디 터미널에 들립니다. 

훈자로 가는 버스의 출발시각은 5시로 되어 있지만, 이슬라마바드의 출발시각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로 라왈핀디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6시입니다. 꼭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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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새벽 6시에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는 오후 6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무려 12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터미널 근처에 정말 잘 지어놓은 대형마트가 있었습니다. 

반가움도 잠시 이곳에 대형마트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는데요. 바로 대형마트 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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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화 대형마트 앞에 바로 난민촌이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터미널 앞부터 시작해 이곳은 수많은 난민들이 터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바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입니다.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온 것인데요. 

너무나 잔인하게도 보란 듯이 이렇게 대형마트가 앞에 서 있습니다. 


이곳에 난민촌이 만들어진 이유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입니다.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쌍둥이 빌딩테러 사건의 배후자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조직한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보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벌인 전쟁을 입니다. 

이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테러 사건 발생 뒤 미국은 즉시 전쟁상태를 선포하고 테러에 대한 장기전을 선언하였습니다. 

미국의 동맹국은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연합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이며, 

그 밖에 파키스탄·우즈베키스탄·일본·한국 외에 러시아와 중국도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전쟁을 지지하였는데요. 

배후 조종자로 지목된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는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에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탈레반 정권이 이를 거부하자 10월 8일, 미군과 영국군은 아프간의 수도 카불과 남부 칸다하르, 동북부의 잘랄라바드 등 

주요 도시의 군사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이날 공격에는 50기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5대의 폭격기와 25대의 전투기, 정찰기, 항공모함, 잠수함 등등 동원되었습니다. 

이 공격으로 탈레반의 방공망과 본부·공군기지 등이 거의 파괴되거나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10월 19일에는 미국 육군 특수부대인 레인저 대원 200여 명이 탈레반과 첫 교전을 함으로써 지상 작전에 돌입하였습니다. 

10월 29일 미국과 동맹국들은 공중을 이용한 제한 공격을 계속 감행해 탈레반의 군사시설 대부분을 파괴한 뒤, 

다음 달 18일에는 반 탈레반인 북부 동맹군을 앞세워 아프간 국토의 80%를 장악하였고, 

이후 탈레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전쟁은 개시 한 달 만에 종결되었습니다. 

정말 미군의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준 전쟁이었는데요. 

하지만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이웃 나라 파키스탄에서는 하루 10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반미시위가 일어나고, 

중동국 등 이슬람권의 반발도 계속되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는 탄저균 비상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프간에서만 15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고,

공중 폭격 당시의 오폭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함으로써 국제인권단체들의 비난도 잇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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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난민촌이었습니다만, 

그런 슬픔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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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잠깐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잃고 열악한 환경 속에 살아가도 사람들은 웃으며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국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을 가지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 테러와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일어나게 만드는 핵심인물인 빈 라덴은 

수년간 은신 생활을 하다가 2011년 5월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외곽에 있는 한 가옥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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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때 즈음 낫코버스가 도착하였습니다.

대우버스를 타고 와서 그런지 갑자기 일반 버스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필자는 이 순간을 위해서 새벽 6시에 도착했어도 버스에서 기절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약 24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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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계획대로 눈을 감고 잠깐 뜨면, 시간이 훅훅 지나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밖에 너무나도 멋진 풍경이 펼쳐졌지만, 너무 피곤하여 잠깐 보고 자고 다시 잠깐 보고 자고를 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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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24시간 탄다는 것은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라왈핀디에서 훈자로 가는 길 중에 12시간이 걸리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왜 굳이 24시간이나 걸리면서 이 길을 가냐 의아해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 길이 탈레반 길로 불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2시간을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탈레반을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12시간 빨리 가려다가 12년 넘게 집에 못 돌아갈 수 있습니다. 

파키스탄하면 탈레반을 얘기 안 할 수가 없는데요. 파키스탄의 치안이 좋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탈레반입니다. 


탈레반하면 테러조직을 떠올리실 겁니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탈레반은 하나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파키스탄 탈레반으로 나누어 집니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권 전복 및 샤리아법을 바탕으로 하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합니다.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던 파키스탄계 탈레반 중 다수가 본국으로 돌아왔고, 

파키스탄 북서부의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인 FATA(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Areas, 소수종족 보호지역)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활동 지역이 광범위해지자 

2007년 7월 당시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한 모스크에 은둔 중이던 반정부 무장단체 대원 포위 작전을 실시하여

80여 명 이상의 대원이 사살하였고, 50여 명을 체포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소규모로 독자적 활동을 벌이던 무장단체들이 결속하는데요. 

2007년 12월, 13개의 단체가 파키스탄 탈레반운동을 조직하였고, 

초대 수장은 바이 툴라 메수드로, 미군과 파키스탄 정부의 합동 무장단체 소탕 작전 중 무인항공기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였습니다. 

하키물라 메수드가 제2대 수장으로 활동하다가 1대 수장과 마찬가지로 2013년 11월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사망하였고, 

현재의 수장은 마울라나 파즈룰라라고 합니다. 활동 중인 대원은 최대 30,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며, 

알카에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자금 및 전략과 전술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조직 결성 직후부터 현재까지 근거지인 FATA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전역에서 무수한 테러를 자행하였는데요. 

차량폭탄, 자살폭탄 등을 이용하여 호텔, 학교, 공공기관, 국제연합 산하 기구 등 국제기구 공관 등을 공격하였습니다. 

2014년부터 파키스탄 정부가 이들에 대한 대규모 소탕 작전을 실시하여 약 3,000명의 대원을 사살 혹은 체포하고,

조직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 201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97년생 여자아이를 기억하시는지요.

이 아이의 이름은 말랄라 유사프자이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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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셔널지오그래픽

 

여성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살면서

시인이자 교사인 말랄라의 아버지 지아우딘은 쿠샬학교를 세워 여자아이들을 가르쳤고,

말랄라는 만 11세이던 2009년 영국 BBC 방송 사이트의 우르두어 블로그에 익명으로

탈레반 점령지의 억압적 일상과 여성들의 교육을 금하는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글을 올렸습니다. 

이 블로그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켜 뉴욕타임스의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지는 등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말랄라의 신분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 10월 9일 쿠샬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말랄라는

파키스탄 탈레반 무장대원이 쏜 총알에 머리와 목을 맞아 중태에 빠졌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고,

가족과 함께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되어 재활치료를 받은 끝에 다행히 극적으로 회복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파키스탄의 여성 교육 문제에 국제적인 이목이 집중되었고, 

말랄라는 2012년 말에 CNN이 선정한 '올해의 흥미로운 인물'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파키스탄에서는 여성 교육권 운동이 일어나 200만 명이 서명하였고 정부는 교육권리 법안을 통과시켰는데요.

또 영국의 전 총리이자 유엔 글로벌 교육특사를 지낸 고든 브라운은 2013년 "나는 말랄라다(I am Malala)"라는 슬로건으로

2015년까지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캠페인을 주도하였습니다.  

말랄라는 건강을 회복한 후에 영국 버밍엄에 터전을 잡고 학교에 다니면서 여성과 어린이의 교육권을 옹호하는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요.

말랄라의 행보가 이슬람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하는 파키스탄 탈레반의 살해 위협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에 굴하지 않고

2013년 7월 12일, 만 16세 되던 생일에 유엔에서 청년 대표로 여자 어린이의 교육권에 대한 연설을 하였고 유엔은 이날을 '말랄라의 날'로 정하였습니다.

2014년 어린 나이에도 위험한 상황 속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고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하여 투쟁한 공로로

인도의 아동인권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와 함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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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한 지 24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는 아니고, 2,300원을 내고 VIP 승합차를 1간 정도 더 타야 훈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배낭여행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왔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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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에서 떠난 지 80시간 만에 드디어 훈자의 카리마바드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곳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힘들게 찾아오고서 또 다시 찾아온다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입니다. 

필자는 도착한 후, 하루에 2,500원 하는 도미토리를 잡은 후, 정말 쓰러져서 잠을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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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도대체 왜 이곳이 여행자의 발을 묶는 곳이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훈자의 모든 호텔 게스트하우스에선 회색 물이 나오고, 즐길만한 것들도 없으며 

무엇보다 먹을 만한 식당이 많지 않아 메뉴 또한 한정적이었습니다. 

필자와 친구는 훈자의 일정을 줄이고 인도의 라자스탄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정보를 찾던 중, 

친구의 발에 갑자기 염증이 나기 시작하여, 정말로 이곳에 발이 묶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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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친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훈자에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이 다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훈자에 계속 머물고 있는 우리를 보았습니다. 훈자는 그런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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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토록 작은 마을이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이 되었는지,

그리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왜 여기서 영감을 얻었는지, 

필자는 서서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훈자는 그런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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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은마을에서도 왜 인도와 파키스탄이 사이가 좋지 않은지 밤마다 알 수 있었습니다.

밤마다 구워지는 소고기 또한 이곳이 좋아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훈자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관광지로는 사실 그렇게 큰 매력이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다 보면 저절로 이곳에 더 머물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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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는 그런 곳입니다.

 

필자 개인적으로 훈자는 조금 다른 여행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뭔가를 보기 위해 온다는 것 보다는 이곳의 사람들 그리고 분위기, 자연, 밤마다 마을 위로 쏟아지는 별, 등등 

여러 가지를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지내다 보면 이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여행기에서는 훈자에서 지내는 삶에 대해 좀 더 알아가 보려 합니다. 

훈자뿐만 아니라 훈자 주변에 너무나도 멋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그런 멋진 곳을 더 멋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훈자사람들인데요. 

훈자사람들을 보면서 왜 이곳이 장수마을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훈자 얘기를 꺼내니 필자 개인적으로도 설렙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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