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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순/아르누보 타운

Alesund/Art nouveau town

작가 자유를 향한 열망 조회수 468 추천수 0 등록일 2018-02-12

지역 : 노르웨이 > 베스틀란데트 지역 > 뫼레오그롬스달 > Alesund



 

2007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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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슬라 크니 벤 (Aksla Kniven)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길은 1904년 1월 23일 자정이 지난 2시 15분경에  아스포야섬 부두가 네드르 스트렁거터45번지에 위치한

올레순 상호 협동조합 공장에서 치솟기 시작했다. 암소가 토치를 걷어차기 때문에 합선으로 불이 시작되었다고 실제로 알려져 있다.

 북대서양 강력한 북서 폭풍이  올레순 섬에 몰아치면서 전기 합선으로 인한 불꽃이 일면서 

순식간에 목조 창고와  인근 가옥으로 눈 깜짝 사이에 옰겨  붙어,  15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순간에 850채

가옥이 모두 붙어 타  전소되었다.  도시인구 1만 2천 명 중,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였는데 사망자는 노인,  단 1명뿐이었다. 그것도 지갑을 갖고 나오기 위해 되돌아가다 화를 당했다

.(올레순에서는 1895년 12월 12일 카이저 빌헬름 게이트 스팀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큰 도시 화재였다. 올레순 화재는 유럽 전역에 널리 보도되고 알려졌다.
3년 후 올레순은 완벽하게 새로 태어났다. 독일의 발 빠른 지원과 큰 도움 덕분으로 도시는 새롭게 지어졌다.

 특히 독일 황제 카이저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의 뛰어난 선제적인 결정과  진정 어린 도움으로 빠른 복구가 가능했다.

그는 평소 이곳을 자주 방문했는데, 화재가 아직 진압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소식을 접한 황제는 인력, 식품,

의약품, 임시 대피소 자재와  복구 자재를 실은 배 4척을  즉시 출항시켰다. 화재 발생 3일 만에  선박 4척은 

 올레순에 도착했다. 독일의 도움은 매우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선상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올레순시는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거리 이름을 황제빌레름 2세거리로 명명해서 은혜에 보답했다.

 파리에서는 루이 풀러(Luise Fuller)와 사라(Sarah) 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출연하는 자선공연이 열리고,

부다페스트와 독일 상공인들과 구세군이 모금에 나섰다. 특히,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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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파크 킨( Byparken) 공원에서 촬영

레순 대화재 이후  긴급구호물자는 전 세게 모든 곳에서 현금으로 왔다.  노르웨이 전국에서 일어난 도움은 실로 컸다.

  베르겐과 트론헤임, 썬 모어시는 많은 물자를 지원했고 중부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 릴레함메르(Lillehammer, 1994년 동계올림픽 개최)

초등학생들은 전교생이 60크로나씩을 모금했다. 그리고 올레순으로 향하는 모든 철도 요금은 무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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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 건물이 밀집된 브루순데겟 마리나 ( Brosundet Guest Marina) 주변

 

시를 재건하는테 필요한 자금은, 보험금과 건축주 자금, 국가에서 제공하는 건축 담보대출이었다. 올레순 화재를

기점으로 도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내화자재 사용이 법으로 제정되었다. 1904년 5월 도시건축에서

 방화벽 (Murtvangloven) 사용을 의무화하면서  벽돌과 석재를 사용한 방화재료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벽체를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예전 건축과는 구조적으로 달랐다. 습하고 바람 부는 기후에, 견딜 수 있는

 벽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시험해야 했다.  석조 건축용 구조 벽돌 공법으로 콘크리트 벽체, 석회사암 또는

자연석을 사용하였는데, 일반적인 벽돌 구조는 압력 응력에 대하여 상당한 지지력을 가잘 수 있지만

 장력 및 굽힌 응력에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따라서 힘을 받는 구조사용은 압력 스트레스에 실질적으로

노출되여 있는 벽, 기둥, 아치, 금고 돔 등 구조체에 가해지는  압축력, 전달은 석조 건축의 중심이다.

이러한 불연 구조를 의무화한 것은 화재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였다. 벽돌집은 목조 집보다 비쌌지만

 보험료는 70%가 저렴했다.  600채의 집이 지어졌는데 그중 절반은 벽돌로 지었다.

모든 건축가는 노르웨이인들이었다.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사람들은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하고,  화재로 집을 잃은 모든 사람들이 참가하여 공동으로 대출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노르웨이 중앙은행(Central Bank for Norway)을 통해 대출을 확보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건축에 소요되는 인건비 절반을 부담했다. 나머지 임금은 지방자치단체가 나누어 지불했다.

 화재 발생 이후  새로운 도시 건축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로, 노르웨이 전역에서 50명이 넘는 건축가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새로운 도시는 노르웨이만의 독창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건축기법을 적용키로, 하고 화재에 강한 자연석과 

벽돌 등  불연 자재를 사용키로 결정했다. 당시 건축가들은 국가적 낭만주의를 표방한  아르누보 양식에 주목했다.

 독일 건축양식에 매료되었는데 아르누보 스타일이 유럽 전역에 확장하고 있을 때였다.
만, 3년 만에 도시는 기적처럼 새롭게 태어났다. 320채가 넘는 아르누보 건물이  마을 한가운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가장 완벽한 아르누보 타운이 만들어진 것이다. 피오르드에 둘러싸인 섬과 산, 바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마을로 재 탄생한 올레순은 노르웨이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환상적인 곳이 되였다.

 아르누보 스타일로 디자인된 아름다운 파스텔톤  건축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으로 변했다.
1904년  화재가 휩쓸고 간 올레순(Alesund) 중심지에 새로운 건축양식을 적용한 동질화된 건축양식이 들어서면서

올레순은 예술적, 건축적,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곳으로  재탄생 되였다.
아르누보는 현지에 맞게 재해석되었으며,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이  폭넓게 적용되었다.

 1985~2003년에 노르웨이 문화유산 관리국(Directorate for Cultural Heritage) 은 특히 가치가 특출한 10채를, 

 아르누보 보석이라는 별칭과 합계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국가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은 문화유산 관리법 15조에 의거, 전통적인 재료와 기술을 사용하고 문화유산 감독관의 승인을 받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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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sundet Guest Marina 지역 (비파 킨 공원 높은 곳에서 망원으로 촬영)

시 새로운 도시 건설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노르웨이 특성을 갖춘 건축물을 짓고 싶어 했다. 30세 건축가인

  Sigurd Lunde는 1904년 5월 쇠데르 폴 케인이 드(Søndmøre Folkeidende)에서 우리는 불균형으로부터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 독창적인  스타일이 필요하다. 노르웨이 민족 특색을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적용하고 싶다.  

 우리 의식과 풍습, 취향과 선하심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건축을 원했다. 적어도 이에 오르가적  목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1890년 말에 베를린에서 건축학을 수학했는데, 동료들과 합계  

노르웨이 건축이 독일 역사주의(Historicism, 역사적인 장인작품을 모방하거나, 영감을 얻는 예술적 스타일)

 영향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르웨이는 1910년 트론헤임에 NTH 가 설립될 때까지 특별한 건축교육기관이 없어서

 주로 독일에서 수학했다. 올레순의  또 다른 저명한 건축가 칼로 룸 (Karl Norum)은 새롭게 지어지는

우리 도시는  돌을 사용하여  독창성과 개성을 살리고  건물들이 전통과 미래를 위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축가의 생각은  올레순 건물들이 노르웨이 자연석, 특히 화강암과 대리석을 민간주택과 비즈니스

건물 모두에 광범위하게 사용해서 내구성과 독창적인 건물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건물에  장식되는

소품과 디자인,  내, 외부 모두 노르웨이 바이킹과 중세에 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동시에 역사적인

특징을  창문 디자인과 벽체와 상방 아치에 적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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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들은 그들 목표를 구현하고 싶어 했다. 당시 아르누보 스타일에서 민족적 뿌리로 돌아가고 싶은 뚜렷한

 욕구가 강하게 일고 있었다. 고대 형식주의로부터 분리하려는 의지, 건축에 대한 경직된 인식을 바꾸고

 싶어 했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올레순 아르누보 건축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기술을 촉발시킨 이정표적인 곳이다.
올레순은 트렌드 하지만 역시 유럽의 한단면이고 구성원이다 자연히 당시 크게 유행하고 있던 건축 사조를 외면하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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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커 구텐( Fiskergutten) 동상 앞에서 바라본 풍경

부와 접부의  신속한 지원으로 매우 빠르게  1907년 말 새로운 아르누보 타운이 건설되었다. 총 675채 건물이 완성되었는데

 벽돌과 석재 건물이 391채, 284채 목조주택이 지어졌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새로운 신도시로

새롭게 설계된 하수관과 가스관 및 케이블용 파이프라인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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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순(Alesund) 관광안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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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순 시청

루즈 선박이 드나드는 내항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올레순 시청은 1980년에 세워졌다.

건설 비용 136,400,000Kr 소요되였다. 아르누보 건물 5채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건설된 것인데

  결렬한 반대 운동이 있었다. 시민단체와 유적 보호 운동가들은 아르누보 건물 철거를 결사반대해서

 일부 회원은 철거예정 건물에 입주해서 몸으로 막았다.
새로 건설된 시청은 11층과 4층으로, 1층에 주차장과 판매시설, 도서관, 회의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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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te Mann

청 앞에 세워진 이 조형물은  조각가 Boge berg 작품으로 초 현실적인 꿈의 인물을 표현한 것으로

어둠과 빛의 삶! 나는 누구인가 등과 같은  상상 속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높이 4.5m  세라믹 콘크리트

 조각품 1982~88 년, 1990~92년 노르웨이 조각가 협회 회장  , 노르웨이 미술 아카데미 교수.를 역임했다.  
시 문장은 1898년 4월 1일 칙령에 의해 승인되었는데 화가 안드레아스 블로흐가 디자인했다.

문장은 어업이 이 도시에서 경제적 기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올레순은 노르웨이 법과 왕실 칙령에 승인된 첫 번째 문장을 가진 도시가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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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 Haavet (어부의 아내상 )

상은 항구 입구를 바라보는 사팔 빅 광장 남쪽에 1989년 6월 6일 세워졌다.
1885년 8월 33명의 어부가 13척 어선에 나눠, 타고 올레순 북서쪽 대서양 바다에서 조업 중에 강력한 북극 폭풍을 만나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29명의 아내와 113명의 자녀들이 있었다. 많은 가족이 동상이 세워진 이 주변에 살았다.
모토하벳은 왼손으로 햇빛을 차단하며, 남편이 돌아오는 바다를 한없이 응시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동상은 크리스탄 코겐이 만들었다.
1985년 추모비 건립 공모에서 1등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시민 성금과 공공단체, 정부 지원으로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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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순데겟 마리나 (Brosundet Guest Marina)

스페이(Aspoy) 섬 올레순 중심지역으로 이곳에 아르누보 건물이 집중되여 있다.  아르누보 박물관과 해양 박물관,

시청 등이 이곳에 위치한다. 소규모 관광선과 낚싯배, 인근 도서로 출발하는 선착장이 있으며,

  피오르드 관광선이 이곳에서 출발한다. 입구에 방파제가 외항 파고를 막아주기 때문에 아스 페이 섬과 

 서쪽에 위치하는 노르 비야(Norvoya, 섬은 올레순 자치지역 중 가장 큰섬) 수로는 항상 붐비고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그리고 올레순 관광이 시작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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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커 거 텐(Fiskergutten) 소년 어부 상

Brosundet 운하 아포테커토르게 광장에 세워진 소년 어부 동상은. 어부라고 부르지만 예술가들은

 이것을 Skarungen  이라고 부른다 소년은 젊음의 빛과 미래에 대한 기대의 상징이다
아이슬란드 아쿠레이리(Akureyri)시는 1949부터 올레순과 자매도시로 아쿠레이리 시에서 기증한 것이다.

 1967년 크누트 스키네르낸드가 제작했다. 그는 당시 노르웨이 최고의 조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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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순데겟 마리나 (Brosundet Guest Marina)

 

2017년 크루즈선으로   올레순을 찾은 관광객은 329,000명으로 172척, 크루즈선이 입항했다 크루즈선이 입항하면

 온 시가지가 사람으로 꽉 찰 정도로 북적인다
거의 대부분 관광객들은 크루즈선으로 올레순에 온다. 오슬로, 트론헤임, 베르겐에서 오는 항공편이 매일 운행된다

. 육로를 통해서 오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길도 험하고 멀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올 수가 없다
베르겐에서 버스로 올레순까지 하루 1-3회 운행되는데, 9시간 15분 소요된다.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승용차로 출발해서 덴마크 유틀란트반도와 올레순 해협 터널, 대교를 건너

 스웨덴 서해안을 따라 올라와 노르웨이 내륙을 통해서 이곳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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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쪽 그린색 건물이 아르누보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국 광장(Apotekertorget) 앞, 브로선뎃 게스트 마리나 지역 양쪽에 아르누보(Art Nouveau)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노르웨이는 독일 이름인 유겐트 스틸(Jugendstil)로 불리는데 어원은 뮌헨에서 출판되었던

 새로운 예술운동을 지지하는 예술 저널에서 유래한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아르누보는 국가적 낭만주의와 결합되었으며,

 바이킹 민속 예 술과 공예에서 받은 영감을 적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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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순데겟 마리나 주변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 내가 도착한 첫날은 세찬 비바람이 솥 아져 내려서 악슬라 전망대

 주차장에서 무려 2시간을 차 속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도 비가 멈추지 않아  호텔 체크인 후, 

호텔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올레순에 무려 5일간을 머물렀는데 단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해서 

아쉽게 다음 예정지로 떠났는데 틈틈이 올레순 날씨를 체크해보니 계속해서 흐린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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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 스칸 세 카이아  선착장과 터미널에서 후르 티그 루텐 해안 페리와 낚싯배, 인근 도서, 건너편 룬테(Runde) 섬으로 떠난다.

 올레순 서남쪽 67km 떨어진 룬데섬은 230종 조류 50만 마리 이상 80종류 조류 서식지가  확인되었는데.

 노르웨이에서 가장 다양한 조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십만 쌍 섬새를 비롯한 북양 가마우지

, 풀무 갈매기 바다제비, 바다쇠오리 그 외 100여 종 조류가 서식한다. 1725년 네덜란드 선박 Akerendam 

 가 이곳에서 침몰했는데 난파선에서 발견된 금 때문에 보물섬으로 알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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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순은 옛부터 청어 도시로 명성을 날렸으며, 일 년에 30만 톤 이상을 수출하는 수산도시이지만  주변지역은 가구산업이 발달되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토케 유모차(Stokke)는 1932년 올레순에서 탄생했다.

 1932년 설립 당시에는 버스 의자, 안락의자, 사무실 및 가정용 가구 업체였지만 1972년 아이들을

위한 제품 트립 트랩을 출시하고 40년간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철학을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
안락의자 스트레스리스(Stressless)를 생산하는 이크르네스 사는  피오르드에서 태어난

장인정신을 모토로 40년간 리크 라이너와 가정용 소파를 생산한다 특허받은 안락함 기능을 갖춘 홈시어터 소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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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안에 있는 호텔 브로슨데 와 리가 스칸디나비아 호텔

호텔은 내항에 있는 생선 창고를 개조해 만든 것인데 호텔을 확장하기 위해서 아르누보 건물 두 채를 철거하고 건설되었다.

 2007년 건설된 이호텔은 기존 아르누보 건물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1904년 처음 건설된

당시 내부 디자인과 벽지 의자, 소품을 그대로 보존하고 재현했다. 아르누보 건물들을 둘러보기

 위해서 방파제로 나아가 촬영했다. 당시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과 격려한 반대 운동을 극복하고 건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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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항구 안에 위치하는 호텔 브로순데는 아주 매력적인 부티크 호텔로 창고로 사용되던 아르누보 건물 내부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전통적인 디자인을 통해서  투숙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모던하게 꾸몄다..  호텔은 두꺼운 목재 바닥과

항구와 바다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큰창과  편안한 소파를 갖춘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항구 조망 객실은 별도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Nkr 200크로네 우리 돈 약 25~3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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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보는 1890년과 1910년 사이에 가장 주목받는 건축, 과 응용미술 사조로  유럽을 중심으로 건축과

응용미술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르누보는 건축, 회화, 그래픽아트, 실내디자인, 보석류, 가구, 직물 도자기. 유리공예, 금속세공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미세하고 섬세한 장식적인 예술 분야에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아르누보를 예술과 공예가 결합된 아트앤 크래프트로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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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보가 건축에 처음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893년 브뤼셀에서 건축가 빅터 호르 타가 건축한 호텔 타셀(Hotel Tassel)로

당시 혁신적인 디자인과 재료, 장식을 사용하여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벽돌과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건물에  유리로 덥힌 강철 지붕구조를 갖추고 집안 내부 공간구성에서

다른 층과 연결하는 계단을 그라운드로 설계하고 문 손잡이, 스테인 글래드 창, 모자이크 바닥과 가구,

 일반적인 내부 구조를 반영해서  호화롭고 하례하게 장식했다.  
2000년 유네스코 위원회는 이 건물을 아르누보 초기 건축물로, 가장 주목할만한 선구자적 건물로

 빛의 확산, 장식의 곡선과 건물 구조가 훌륭하고 조화롭다고 평가하면서, 유네스코 세게 문화유산으로 지정 사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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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후 올레순 도심을 재건축하면서 건축가와 행정당국, 시민 모두는 이심, 전심으로 미래지향적인

  노르웨이  특징을 갖춘 일관된 건축적 표현을 구현하고자 했다. 제한된 지역 안에서

 아르누보 스타일을 구현하여, 독특한 환경에 어울리는 예술적 건축학적, 문화와 역사가 녹아든 북유럽

특유의 아르누보 건축 타운이 태어났다. 이러한 아르누보 건축유산은 세계적으로도 이곳이

유일한데,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건물 외양에 그려진 문양, 디자인 아치형 문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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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당국은 건축 허가와 준공에서 미적 감각을 절대적으로 요구했다
일례로 건물 기술 요건을 심사했는데, 최대 높이, 방화 자재 사용, 비상 및 피난계단과 같은 요소들을 중점적으로

건축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청결하게 건물을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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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노르웨이 건축은 오래된 교회 복원작업을 거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석재를  사용하여 오래된

교회를 복원한 트론헤임, 니다로스 대성당과  베르겐 하콘스할렌 교회 복원과 바이킹 난파선의 발견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에게 강한 감명을 주웠다. 이러한 요소들이 올레순 아르누보 건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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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가들은 또한 오래된 노르웨이 목조 교회에서 영감을 받았다
노르웨이는 여러 곳에서 오래된 주택 보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건축가들은

 노르웨이 전통에 뿌리를 둔 건축과 국가적  목표가  일관된 스타일을 지향했다. 미래를 향한

 건축 스타일은 건축가 개개인뿐 아니라 건축주 노력도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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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순에서 노르웨이 양식은 자연석을 최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자연석 사용은 실용적이고 가격도 저렴해서  당국은 건축자재는 자기 나라 재료로 지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 있었다. 

건축뿐 아니라 도로포장자재도 자연석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이곳저곳 거리를 걸어보면

거의 모든 도로는 화강암으로  포장으로 되어 있는데 도로 단면이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되어 있다.

도로 중앙으로 빗물을 모아 배수하는 구조로 배수로를 한 곳만 설치하면 되지만,  우리나라는

 중앙을 높이고  양쪽에 구배를 두워  배수구조물을  2곳에 설치한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느꼈다.
도로 양옆 건물로 물이 침투하지 않음으로 물로 인한 건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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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순에 온 건축가 중 적어도 7명은 석공술분야에서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주로 관공서와 은행, 우체국 교회 건축을 지은 크리스티안 프루스트(Christian Fürst) 형제와 한스 벡커 프루스트(Hans Backer Fürst)

 형제는 유명한 건축가들로 노르웨이 자연석 특징을 살린 건물을 설계하고 적용하였다 일례로

자연석 선택 시 돌 종류와 빛 굴절까지를 고려해서 사용 위치와 결정했다.
자연석 거친 표면을 사용하고 일부는 연마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한번 작업으로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

견고하게 시공된 자재는 건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유지 보수가 필요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건축을 요구할 정도였다.
그리고 오래된 교회 장식에서 영감을 받고 바이킹 박물관을 찾아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노르웨이 자연석을 사용하는 건축은 민족유산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표현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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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순 아르누보 건축 과정에서, 결론부터 말해 프랑스와 독일에서 탄생된 아르누보 디자인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자료는 없다. 1904년 건축 당시 아르누보라는 말이 사용한

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올레순 아르누보 건축이라는 것은 후대에 생긴 것으로

 올레순 재건축 기간 동안 아르누보 디자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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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 건물 1층 스토어에 진열된  쇼윈도  북유럽 서정이 물씬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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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건축가 Hagbarth Schytte-Berg는 올레순에서 건물 19채를 설계했는데, 나중에 보니깐

그의 전 작품이 가장 강력한 아르누보 엠보싱이었다  그는 독일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개인적

국가적 미래 방향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가  설계한 변칙적인 창문 모양, 평범한 아치문,

납유리창문과 비 대칭 리듬 등 아르누보 특징이 그대로 묻어나는 특징을 보이는데도  그는 독창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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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이 진행하는 동안 노르웨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레순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북유럽 전체가 경기 침체기에 빠져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몇몇 건축가는 올레순에 사무실을 내고 이곳에 정착했다. 주민들은 집이 지어질 때까지

 다른 곳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었다. 건축과 관련된 노동자, 공예가, 엔지니어들이 좁은 구역에서

식사를 위해 식당과 카페에서 만나 서로를 알게 되면서 건설과 관련된 문제를  상의하고 협의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경쟁하게 되였다. 상대 건축을 비교하면서 경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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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친 올레순 거리 풍경 쌀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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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순을 여행하면서 아르누보 건축은  그 시기를 매우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시간 정신은 아주 정확하게 아르누보 마을에 새겨져 있다. 재료 사용 및 장식 부품, 외부에 그려진 그림 등

 이것은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노르웨이 현상이지만 여러 나라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것을 도입한 것이다.

아르누보는 중요한 요소였다.  건축가 대부분은 역사적인 전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독일과 프랑스  아르누보와 비교해  더 많은 역사와  전통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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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적 유산으로 아르누보/아르누보는 올레순 브랜드가 되였다.
유럽 어느 지역보다도 다양한 아르 누보 건물이 존재하는 올레순은 유럽 많은 사람들이 아르누보 건물을

 이해하고 보기 위해서 찾아오는 관광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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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순 아르누보 건축은 그 시대 건축에서 매우 특별한 장소를 차지한다.
1970년대부터 올레순은 아르누보 건축물에 대한 최초 보호계획을 수립했다. 건물 전면 부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보호하는 계획이었다. 그해 아르누보 건물 보존을 위한 호엔(Houen)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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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국가지정문화재로 선정되여 보호받고 있는 아르누보 건물은 총,  10채로, 맨 처음 지어진

건물과 가장 작은 주거용 건물, 해안가 상업시설과 창고, 사무실 용도로 지어진 건물, 회의 용건 물,

비즈니스용 아파트, 빌라 및 개인주택 등 이 있다.
이 건물들은 국가보호 아래 유지관리가 이뤄지고 나머지 건물들은 시 당국 규정에 따라 보호되고 있다.
 올레순은 아르누보 시의 성격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건물벽 유지와 내외부 벽지, 조각품,

 회화 부속품 손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창문과 창문 정착들, 스테인글래스유리,마스코트등

매우 많은 세부 사항 중 특히 독특한 아르누보 창과 계단이 있는 문, 창문 멸실을 우려한다

이것이 없다면 건물 중요 스타일이 사라지기 때문에 문화적 가치를 잃는다.
올레순 시정촌이 특히 걱정하는 것은 오래된 건물 사이에 공터에 세워지거나 화재,로 소실되여

새로 지어질 때 오래된 건물과 새로 지어지는 건물이 조화를 깨뜨리고  이전 건물들과 전혀

다른 자재를 사용해서 건축한다면 단일 환경이 파괴된다는 점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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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박물관 기구인 Icomos는 올레순 아르누보를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노르웨이 건축 기념물로 선정했다.

올레순 정착촌에는 여러 곳 아름다운 건물이 있지만 대부분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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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 위야(Aspoya)  섬 중심가 언덕에  석재와 대리석으로 지어진 교회는  사진보다

 상당히 웅장하고 크다. 건축가 스베르 크누첸에 의해  1909년에 지어졌는데, 교회는

 800명 신도를 수용하는 규모로 상당한 규모다. 올레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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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불퉁한 바닷가 바위를 훼손하지 앉고 그 위에 북대서양 생물과 피오르드 생물들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노르웨이는 수산 국가로 올레순은 수산업의 수도다.  야외 전시장에는 수달과  홈 볼트 펭귄, 

바다사자, 물범 사육장도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수산 교실과 생물학 교실도 운영한다..
대서양 수족관은 유럽에서 가장 큰 해양 수족관 중 하나로, 길이 36m, 널 비  17m로 여과되지 않은 해수 4백만 리터 가 들어있다. 

 유리 두께 26.5cm로 무게는 약 30톤쯤 된다. 자연상태 물고기를 볼 수 있는데 처음으로 1m 가까운 대구  떼를 보는 광경은 장관이다.  
2013년과 2015년에 북유럽 최우수 수족관상을 수상했고  지자체에서 2016년, 관광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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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setbua 건물 (10채 보호 문화재 중 한 곳)

1907년 건설된 Bersetbua -Apotekergata5  은 건축가 젠스 제틀리츠 모나드 크리 랜드( jens zetlitz monrad kielland) 

 설계했다. 그는 1900년대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트론 헤임에

 소재하는 노르웨이 공대 건축과 교수로 노르웨이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다수 설계했다.
이 건물은 운하 옆에 지어진 건물로 1980년대 초반까지 수산물 가공회사 소유로 1995년에 팔렸다

지금은 Brosundets gjestehus 호텔로 개조되여 관광객이 선호하는 호텔이다 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잠시 쉴 겸 차 한 잔 마시기 위해 들어가 봤는데 내부가 작으면서 무척 아기자기하다

소품도 옛날 것을 배치해서 운치를 더한다. 사무실과 다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한 것인데, 

브르셋브아 건물은 이웃 건물과 일정 간격 떨어진 독립형 건물로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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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슬라 크니 벤 (Aksla Kniven)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7개 섬과 피오르에 둘러싸인  올레순 시청과 중심지는 아스펜 위아 섬과 뉘르뵈야섬에 위치하고 있다

. 두 번째로 큰 섬인 엘링스위야는 배와 도로를 통해서 갈 수 있는데 더 편리하게 갈수 있는 해저터널 도 있다.

 터널 길이 3,481미터로 좀 길다.시정촌 은  99평방 킬로미터로 48천 명 인구가 거주하는 노르웨이 17번째 시정촌이다.
주변지역까지 포함한 올레순은  약 6만 명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노르웨이 서해안, 중부권에 위치하는

 올레순은 해양성 온화한 날씨로 인해 겨울에도 0도 이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어느 찬바람이 부는 추운 초겨울 시내 중심가를 걷다가 어느 상점에 걸려잇는 달력 속 올레순 풍경을 보고

그 자리에서  그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올레순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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