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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세계여행#10]호주 거대 레스토랑의 만능 조수로 살아남기.(호주 브리즈번 워홀)

작가 박성호 조회수 367 추천수 0 등록일 2018-03-09

지역 : 오스트레일리아 > 퀸즐랜드 > 브리즈번



[바나나세계여행#10]
호주 거대 레스토랑의 만능 조수로 살아남기.
(호주 브리즈번 워홀)

-[바나나 그 다음,]저자 박성호.


 





나는 거대 레스토랑의 만능 조수였다.
그곳은 차이나타운 뒤쪽에 위치한 굉장히 커다란 건물이었는데, 아시안푸드 레스토랑, 화덕피자 가게, 도넛가게, 카페, 이탈리안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술집 등 여러 가지 가게가 한데 섞여 있었다.










가게 종류만큼이나 하는 일도 아주 다양했다.
설거지와 재료 준비, 바닥 청소는 기본이고, 화로에 들어가 장작 찌꺼기들을 쓸기도 하고, 꽁꽁 얼어붙은 냉동 통돼지를 어깨에 둘러매기도 하고, 요리사들의 개인 비서가 되기도 했다.
그 거대한 건물에서 해야 하는 모든 잡일은 전부 내 소관이었다.












가게는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특히 금요일이나 주말에는 하루에 수백 팀의 주문을 받고는 했다.
이런 날 주방에서는 거의 목숨을 건 전쟁이 일어나는 듯했다.
설거지를 아무리 빨리해도 주문 들어오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수십 개의 접시와 프라이팬이 거대한 산 만큼 쌓여 있었다. 










게다가 식료품 창고는 건물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부족한 물품들을 가져오려면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다.
특히 중학생만 한 덩치의 냉동 통돼지를 높이 들고 거리를 활보할 땐,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그래도 나는 그곳이 지금까지 일했던 어떤 곳보다도 좋았다.
호주인 사장님이 친절하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세계 각국의 요리사, 바텐더, 웨이터 동료들이 좋은 것도 있었고, 가게에 항상 음악이 울려 퍼져서 직원과 손님이 어우러져 전부 춤을 추는 모습도 좋은 이유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곳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배고픈 적이 없었다.
나는 그 가게의 만능 조수이자 음식물 처리반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남는 음식이 생기거나 잘못 주문된 음식이 생길 때, 혹은 그냥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 항상 가장 궂은일을 하는 나부터 챙겨 주었다.
한 번도 이 호의를 거절한 적이 없었고 누구보다 맛있게 음식을 먹어 치웠다.
그래서 한참 일을 하고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거? 성호 줘.”
“어쩔 수 없지, 그냥 성호 줘.”
“거기 남는 거 있으면 성호도 줘.”

일을 하다 뒤를 돌아보면 선반 위에 치킨버거, 안심스테이크, 허니 치킨, 양 갈비 바비큐, 누텔라 도넛 등등 좋아하는 음식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렇듯 음식점에서 일하는 장점은 식비가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늘 퇴근하기 전 그날 남은 음식들과 유통기한이 다 되어 폐기하는 재료들을 전부 챙겨왔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치킨,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각종 야채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모든 직원들이 전부 퇴근한 뒤였다.
새벽 2시쯤이었는데, 항상 가게에 혼자 남아 정리 청소와 다음 날 재료 준비를 하곤 했다.
내게는 이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주어지는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먼저 가게 구석구석 바닥까지 물청소를 다 끝내고 주방에서 커다란 냄비를 꺼내왔다.
그리고 바닥에 휴지통을 뒤집어 깔고 앉아 40킬로그램 포대에 담긴 양파들을 하나씩 까서 냄비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양파를 까다 보면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나면 유리컵을 하나 들고 정리가 끝난 바에 가서 맥주를 한 잔 따랐다.

맥주를 마시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언젠가 내가 이곳을 떠나면 이 많은 음식들을 누가 처리할까?’

이제 보니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여전히 다들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매일 여자 얘기만 하던 인도 친구 라지, 입이 거칠지만 항상 맛있는 음식을 해주던 홍콩 청년 스티브, 시크한 척하면서 나를 가장 챙겨주었던 호주인 제임스. 카리스마 있는 주방의 지휘자이자 헤드 셰프인 호주인 알렉스.
그리고 가장 친했던 동갑내기, 190cm의 거구이지만 아이처럼 순박한 호주인 아이든.








지나고 나서야 알 것 같다.
매일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허니 치킨과 양 갈비 바비큐가 아닌 좋은 사람들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 매일 먹던 음식들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끔 같이 일하던 그 친구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호주 브리즈번 차이나타운의 거대 식당 체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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