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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세계여행#31]호주 시골 컨테이너 캠핑장에서 달밤의 체조를 하다.(호주 바나나농장)

작가 박성호 조회수 226 추천수 1 등록일 2018-04-16

지역 : 오스트레일리아 > 퀸즐랜드



 

 

 

 

 

 

 

[바나나세계여행#31]

호주 시골 컨테이너 캠핑장에서 달밤의 체조를 하다.

(호주 바나나농장)

 

[바나나 그 다음,]저자 박성호.

 

 

 

 

 

 

 

 

새벽 4시, 아직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잠에 빠져있었다.
나는 인기척을 내지 않고 몰래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밖은 여전히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버스에서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더니 창문 밖으로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는데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시골로 가고 있었다.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곳에 도착해도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갑 상태는 최악이었다.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온 뒤 2주 동안 케언즈에서 단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앞으로 한 달 안에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중간중간 승객들이 한 명씩 내리기 시작하며, 이제 이 버스 안에는 오직 나만 홀로 남겨져 있었다.

 

 

 

 

 

 

 

버스는 계속 달려 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주변이 온통 산과 농장들로 둘러 싸여져 있는 이 작은 마을이 내가 새로 정착하게 될 곳이다.

 

 

 

 

 

 

마을 이곳저곳을 한참 돌아다녔지만 도저히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지낼 만한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나는 산 쪽으로 가보라는 한 주민의 말을 듣고 터벅터벅 기찻길을 따라 마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캠핑장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지낼 만 한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캠핑장 입구를 따라 들어갔다.
캠핑장 안에는 덥수룩한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큰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 앉아 있었다. 

 

 

 

 

 

 

 

Greenway Caravan Park(그린웨이 캠핑장) 
잠시 계속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추억 가득한 이곳을 소개한다.
호주 시골 마을 캠핑장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방이 있었다.
그리고 웃기지만 이곳 캠핑장에는 방의 종류에 따라 계급이 존재한다.

 

 

 

 

 

 

 

사진에 보이는 트레일러가 제일 기본적인 '소시민' 형태이다.
조금 낡긴 했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가장 평범한 구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돈이 조금 더 추가하면 기본적인 트레일러에 처마가 딸린 '평민' 집에 살 수 있다.
고작 처마 정도로 크게 다르겠나 싶겠지만, 햇빛이 쨍쨍한 평지에서 그늘의 존재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다음 '귀족' 단계는 비로소 트레일러 형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집 안에 간이 주방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며, 심지어 건물 주변에는 개인 정원까지 딸려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그리고 대망의 '성주' 클래스, 나는 이곳을 캠핑장의 드림 하우스라 불렀다.
실제 대형 열차의 2칸을 그대로 떼어온 것 같은 이곳은 내부의 모든 공간이 개조되어 있어 주방도 있고 화장실까지 있다.
옆에 주차되어있는 차와 오토바이만 보더라도 돈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가격이 쌀수록 화장실과 공용 주방이 멀다. 
산속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공용 주방에는 늘 벌레들이 득실거린다.

 

 

 

 

 

 

만약 당신이 쾌적한 온라인 세상을 지향하던 사람이었다면 캠핑장 생활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에 무려 4만 원이 넘는 무시무시한 와이파이 가격은 한국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용 와이파이와는 다르다.

 

 

 

 

 

캠핑장 사무실 건물에서는 생활, 아니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팔고 있지만 딱히 살만한 물건은 없다.

'쵸콜릿은 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콩은 야채입니다. 오늘 야채 드셨습니까?'
하고 써져있는 종이가 인상 깊다.

 

 

 

 

 

 

그럼 나는 이 캠핑장에 어떤 곳에서 살게 되었느냐고?
이제 다시 캠핑장에 처음 도착한 상황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저기, 방을 구하고 있는데요."
"그래, 어떤 방을 원해."
"그냥 가장 싼 방이요. 다른 건 상관없어요. 싸기만 하면 돼요."


관리인 할아버지가 철제 캐비닛에서 키를 꺼내주자마자 덥석 받아들고 바로 방을 확인하러 갔다.
캠핑장 구석으로 한참을 걸어가니 받은 키에 쓰인 숫자와 같은 번호의 팻말이 보였다.

 

 

 

 

 

 


내가 정말 갈 때까지 가는구나.’ 

방은 충격적이었다.

방이라기보다는 버려진 컨테이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싶었다.
얼룩덜룩한 곰팡이 가득한 매트리스 한 장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작은 밀실이었다.
숲속이라 그런지 벌레들이 여기저기서 기어 다니고 있었고, 철판은 이미 달궈질 대로 달궈져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다.
과연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컨테이너 박스는 일주일에 고작 70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바로 2주치 방값과 보증금 200달러를 계산했다.

이제 주머니에는 300달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됐지만 당장은 이 컨테이너 박스를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는 게 우선이었다.
신발이 물에 젖어 방 안이 온통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먼저 신문지를 잔뜩 깔아놓고 그 위에 짐들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100일간의 캠핑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일 같이 마른 식빵과 1달러짜리 참치 캔 만 먹으며 근근이 버티며 가난한 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을 가질 때까지는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1달러 샌드위치가 아니었다.

 

 

 

 

 

 

'얼어 죽을 것 같아.’ 

자다가 또다시 눈이 떠졌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낮에는 강렬한 햇빛이 컨테이너 박스를 그대로 달구어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웠는데, 밤만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 엄청난 추위가 몰려왔다. 

 

 

 

 

 

 

가지고 있는 옷을 전부 껴입었다.
여러 장의 속옷과 반팔 티부터 뉴질랜드에서 입던 빨간색 점퍼까지 합해서 총 열세 겹.
몸이 비대해져 뒤돌아 눕기도 힘이 들었다.
커버도 없는 매트리스에 누워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렇게 입어도 또다시 느껴지는 추위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3시밖에 되지 않았다.
이대로 긴 밤을 보내면 정말이지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결국 컨테이너 박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캠핑장은 마치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고요했다.
시골이라 그런지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떠있었다.
그 빛을 조명 삼아 캠핑장 자갈길 위로 초라한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반쯤 잠이 든 상태였지만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홀로 달밤에 체조를 하게 된 것이다. 
매일 밤마다 그렇게 미친놈처럼 뛰어다녔다.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캠핑장.
뛰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따뜻해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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