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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스, 신약성서 속의 고대도시

작가 Schtain 조회수 387 추천수 1 등록일 2018-05-15

백과 사전 보기 에페소스박물관, 에페수스, 에베소교회   (항목을 클릭하시면 백과사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 : 터키 > 에게 지역 > 아이딘



 

 

나에게 에페소스는 터키 여행 전에도
신약성서의 에베소서로 이미 잘 알고 있던 고대도시였다.
사도 바울의 그리스와 터키지역을 아우르는 2차 전도여행의 중심이 에페소스였기 때문이다.


▲  에페소스 바실리카 거리의 석조기둥들



▲  에페소스  바실리카 거리의 석조기둥들


처음에 에페소스를 방문하고
놀랐던 것은 도시 전체규모의 방대함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지들이 대부분 많이 파괴되어 거의 돌무더기나 기둥 한 두개 서있는 곳이 많은데
에페소스는 원형극장이나 도서관과 신전의 형태 등이 제대로 남아있었다.
또한 건축적으로 시장과 신전, 도서관등 도시의 구성이 한군데에 모여 있지 않고 주변의 지형을 이용하여 체계적이며 기능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다른 유적지들과는 다른 차별성이 돋보였다.


 

          ▲  에페소스 유적의 위치 


      

에페소스는 터키 서부 소아시아의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이즈미르주의 카이스트로스강 어귀에 있으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 의해 기원전 9세기에 건립된 식민 도시 유적이다.


▲  에페소스의 쿠레데스 거리



▲ 트리야누스의 샘


신약성서에서는 에페소 또는 에베소로 나오는데
에페소스는 고대의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요충지로 번성하였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시 쇠퇴하였다가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된 뒤 새로운 에페소스가 건설되면서 헬레니즘 도시로 부흥하였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전성기를 누렸으며 로마 식민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페소스는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  에페소스 유적의 주변 풍경


▲  에페소스 유적과 주변 풍경


에페소스는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에페소,
한글 개역판에서는 에베소로 표기하고 있으며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이 전도와 사목을 한 교회중 하나가 에페소 교회였다.

또한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7개의 교회중 하나가 에페소교회일 정도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  에페소스 유적과 주변 풍경


▲  히드리아누스 신전과 멀리 셀수스 도서관이 보인다.


에페소스는 아네테의 왕자 안드로클로스가
도시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안드로클로스는 아테네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델피에 신탁을 하는데 예언자는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면 번성할 것 이라고 하였다.

왕자는 에게해를 건너 도착한 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고 있었는데
그때 숲에서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죽이게 된다. 멧돼지와 불과 물고기가 동시에 만나게 된 것이다.
안드로클로스는 바로 그 자리에 도시를 세우는데 그때가 기원전 9세기이며 그 도시가 바로
성경에 에베소로 나오는 에페소스이다.



▲  에페소스 쿠레데스 거리의 유적

 

에페소스 고대 도시 유적에
보존된 대부분의 기념물과 건물들은 그리스로마 시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도시의 성벽은 기원전 30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인 리시마코스 왕의 치세에 헬레니즘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주요 유적으로는 이즈미르 아고라 와 쿠레테스 거리를 비롯한 도시의 거리들과
켈수스 도서관, 원형극장 등이 있다.


▲  에페소스 원형극장과 항구 거리 풍경



▲  에페소스 원형극장


▲  에페소스 원형극장


먼저 피온산 기슭에 있는 산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지어진 웅장한 모습의 원형극장은 에페수스 유적중 가장 큰 건축물이다.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극장은
2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로마 시대 극장들이
도시 인구의 약 10%를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점을 고려하면 당시 에페수스의 인구는
약 25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에페소스 원형극장의 아래 출입구


▲  에페소스 원형극장


극장에서는 연극을 비롯한 각종 예술 공연과 회의가
이루어졌고 로마 시대 말기에는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도 벌어졌다.

계단에서 보이는 상부의 객석너머로는
극장에서 항구까지 길게 뻗은 아르카디안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에페소스가 에게해와 접한 항구 도시였을 때
배를 타고 에페소스 항구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에페소스로 들어왔다고 한다.



▲  에페소스 항구 거리


▲  에페소스 항구 거리


쿠레테스 거리와 대리석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수스 유적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코린트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이 혼합되어 지어진 중앙 입구는 화려함과 엄숙함을 갖추고 있다.

도서관의 정면에 있는 네 여신의 석상은 각각
지혜, 덕성, 학문, 지식을 상징한다. 셀수스 도서관은 2세기 초반 학문을 사랑하던
로마의 소아시아 총독 율리우스 셀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아들 율리우스 아퀼라가 아버지의 무덤과
도서관을 겸한 2층 구조로 세웠다. 전성기 때는 1만 2천권의 두루마리 장서를 보관했고 그것은 알렉산드리아와 페르가몬에 이어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  에페소스 셀수스 도서관



▲  에페소스 셀수스 도서관


당시 파피루스를 수출하던 이집트에서는
알렉산드리아도서관보다 셀수스도서관이 더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에페소스에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했다고 한다.

에페소스는 파피루스 수입을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양피지로 책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관련하여 이 후 양피산업과 양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번영하던 셀수스도서관의 책들과 건물은 서기 3세기 경에 침입한
고트족에 의해서 소실됐다고 한다.



▲  셀수스 도서관옆 대리석 거리



▲  에페소스 원형극장 앞 항구 거리

 

셀수스 도서관에서 대극장까지 이어지는
대리석 길 왼편의 넓은 광장은 에페소스의 상업 아고라로 항구와 가까운 곳에 조성되어
각지에서 들어온 물건이 총집합하던 거대한 국제 시장이었다. 원형기둥과 아고라의 터가 남아있어 온갖 물건과
다양한 인종들로 북적거렸을 고대 상업 시장의 규모를 알 수 있다.



▲ 히드리아누스 신전



▲ 히드리아누스 신전 중앙 아치 가운데 메두사조각이 있다.



▲ 히드리아누스 신전 옆 승리의여신 니케


쿠레테스 거리의 원형기둥 사이사이로 세워진
인물들의 석상을 구경하며 길을 내려가다 보면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나타난다.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기둥에 새겨진 조각들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신전의 아치에 새겨진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과
양팔을 벌린 메두사 조각이 인상적이다.



▲ 에페소스의 공중화장실



▲ 에페소스의 공중화장실


▲ 에페소스의 공중화장실


쿠레테스 거리의 끝자락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면
벽면을 따라 이어진 대리석에 동그란 구멍들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것들의 정체는
바로 로마 시대의 좌변기로 당시 5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던 공중화장실이었으며
물이 흘러 들어오는 위쪽은 이용료가 비쌌고 냄새가 나는 아래쪽은 보다 저렴했다고 한다.
일부 부유층은 따로 지정석을 이용했으며 하인들이 먼저 와서 차가운 대리석을
덥혀 놓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 에페소스 대리석거리에 있는 유곽의 표지석


▲ 에페소스 대리석거리에 있는 유곽의 표지석


공중화장실의 옆 건물은 고대의 유곽으로 추정된다.
그곳에서 거대한 남근을 지닌 풍요의 신 프라이아푸스의 석상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대리석 거리 위에 여자의 얼굴, 하트 모양 그리고 왼발이 새겨진 바닥이 있는데 
유곽의 방향을 알리는 표시라는 설과 새겨진 발자국보다 발이 큰 성인만 갈 수 있었다는 설 등
지금도 다양한 해석이 있다.

▲ 에페소스 유적에서 결혼 기념촬영을 하는 신랑신부
 

 

에페소스 유적지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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