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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 불교의 4대 성지

작가 Schtain 조회수 293 추천수 2 등록일 2018-06-14

백과 사전 보기 바라나시, 사르나트, 스투파   (항목을 클릭하시면 백과사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 : 인도 > 우타르프라데시 > 바라나시



 

 

사르나트가 바라나시 인근에 있다는 것은
여행 전에 알고 있었지만 불교의 역사상 차지하는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소망하던 바라나시에
간다는 설레임에 묻혀서 여행의 비중과 관심도 작아졌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인도여행을 다녀온 뒤 불교 관련서적을 찾아가며 여행 당시의 궁금증을 풀었고
여행 전보다 오히려 사르나트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지게 됐다.



▲   사르나트 시내의 모습



▲   사르나트 시내의 모습



▲   사르나트 시내의 모습



▲   사르나트 시내의 우리나라 사찰 녹야원 안내표지판

 

석가모니가 최초로 불법을 전한 땅으로 알려져 있는
사르나트는 룸비니, 보드가야, 쿠시나가르와 함께 불교 4대 성지중 하나이다.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이고
보드가야는 깨달음을 얻은 곳, 사르나트는 최초로 설법을 한 곳, 쿠시나가르는 열반한 곳이다.
사르나트는 한문으로 녹야원이고 우리말로는 사슴동산이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를 둘러보고 난 후에 반나절이면 천천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녹야원 사찰도 있어 방문하면 친절하게 사르나트의
역사와 유래에 대하여 안내도 해주고 있다.



▲   사르나트 다마라지카 유적지의 모습



▲   석가모니가 명상을 하였던 자리에 있는 유적 


▲   사르나트 사원 유적지의 모습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   아쇼카왕 시대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위하여 만들었던 사르나트 다마라라지카 탑의 유적지 

 

사르나트는 갠지스 강변에 있는
바라나시에서 동쪽으로 10km 되는 지점에 있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최초로 설법을 한 곳으로 석가모니가 서르나트에서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이유는
진리를 얻기 위하여 함께 고행했던 다섯 동지들과의 인연 때문이었다고 한다.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옆에 있는 디감바라 자인 사원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옆에 있는 디감바라 자인 사원 내부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옆에 있는 디감바라 자인 사원


진리를 깨달은 석가모니는 자신의 지혜를 함께
나눌 사람으로 다섯 명의 옛 동지들을 선택했고 사르나트에서 설법을 하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했던 곳에는 사암으로 만든 거대한 다메크 스투파라 불리는 대탑이 세워졌으며
이후 사르나트는 불교의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아래서 기도하는 스님들



▲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

 

사르나트에서 가까운 곳에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고대시대부터 도시를 형성하였던 바라나시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고대부터 사르나트와 바라나시에서는
불교가 융성했으며 불교예술의 중심 역할을 했고 굽타시대인 4세기에서 6세기경까지 불교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 바라나시에는 왕과 부유한 상인들이 많았고 이들이
불교를 적극 후원했었다고 한다.



▲   사르나트 주변에서 가장 큰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사원



▲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사원 안내표지석



▲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사원


▲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사원


사르나트는 불교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와 상징성을 갖는 곳이다.

붓다는 보드 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었지만 붓다는 얼마 동안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깨달음을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남에게도 베풀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 때문이었다.


▲   사르나트 유적지 옆의 도로



▲   사르나트 유적지 옆의 도로



▲   사르나트 유적지 풍경


언어가 사라진 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과연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깨달음의 내용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고민을 하며 한 동안 침묵하였다고 한다.

붓다 이후 불교의 수많은 분파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붓다의 깨달음 이후 이때의 침묵에서 연원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깨달음에 대한 점검과 동시에 이런 깨달음의 전파에 대한 망설임 속에 있을 때 붓다의 마음속에서
불법을 펼치라는 계시를 받게 된다.



▲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사원 내부



▲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사원 내부 벽화



▲   물라간다 꾸띠 비하르 사원 내부

 

고타마 붓다는 설법을 시작한 순간부터
열반에 들 때까지의 45년간을 중생들에게 그가 깨달은 법륜을 굴리면서 지혜광명을 주게 된다.

고타마 붓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보드 가야에서 불법 전파를 하지 않고
사르나트에서 시작하게된 것은 그의 최초 고행시절 도반이었던 다섯 비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갠지스 강변에서 10km 정도 동쪽에 위치한 숲 속이었다.
고타마 붓다는 묵묵히 이들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으며 도중에서 중생들을 만나서 최초의 설법을 하고
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불교 공동체인 승가가 결성되면서
불교역사가 시작되었다.




▲   사르나트 유적지와 디감바라 자인 사원



▲   다마라지카 스투파 유적지 안내표지판



▲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위하여 만들었던 사르나트 다마라지카 탑의 유적지 

 

사르나트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3세기 중엽
아소카왕시기부터 12세기까지의 시대에 걸쳐서 건물터 유적과 다수의 조각이 출토되었다.

유적을 연구하면서 다르마라지카탑과
근본정사를 중심으로 굽타 시대에 가장 번성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적 중에는 다메크스투파라는 커다란 벽돌탑이 있으며
탑의 높이는 33.5m 인데 다메크는 진리를 보는 눈이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출토품의 대부분은 유적의 남쪽에 있는 고고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입구정면에 있는 아소카왕 석주의 사자상 주두는
같은 종류의 주두 주각 중 가장 장려하며 보존상태도 좋다.
4마리가 등을 마주 댄 사자도 원형의 정판 측면에 부조된 동물도
세련된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   우리나라 조계종의 사찰인 녹야원



▲   우리나라 조계종의 사찰인 녹야원 건물



▲   우리나라 조계종의 사찰인 녹야원의 내부

 

사르나트는 보드 가야와 마찬가지로 인도와 해외에서 세계의 많은
불교도들과 일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고타마 붓다의 활동과 최초의 설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르나트 주변에는 스리랑카나 태국과 같은
전통적인 불교국가는 물론 한국에서 세운 사찰들이 세워져 있어 자기나라의
여행객들에게 성지순례의 편의를 돌보고 있다.




▲   스리랑카 불교지도자가 세운 남아시아불교재단 입구



▲   남아시아불교재단 입구의 설립자 흉상



▲   사르나트 인근의 사찰 입구

 

오랜 세월 불교의 성지였던 사르나트는 13세기에
무굴제국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이후 유적지의 탑과 건물 터만 남게 되었다.

현재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바라나시와 함께 관광지로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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